왕순식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전기 경북 구미의 일리천전투에 참전한 장수.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출생지
명주(溟州)
주요 관직
대광
관련 사건
일리천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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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정의
고려전기 경북 구미의 일리천전투에 참전한 장수.
생애 및 활동사항

본성은 김씨(金氏)라고도 알려졌지만 분명하지는 않고, 왕씨(王氏)는 사성(賜姓)이다. 명주(溟州: 지금의 강릉) 사람으로 신라 말에 스스로 명주장군이라 칭하며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여 궁예와 대치하면서 오랫동안 굴복하지 않았다.

고려건국 후에도 복종하지 않으므로, 왕건은 고심하다가 시랑 권열(權說)의 진언에 따라 당시 중으로 내원(內院)에 머물러 있던, 왕순식의 아버지인 허월(許越)을 움직여 고려로 귀부하도록 권유하게 하였다.

이에 922년(태조 5) 고려에 귀순할 것을 작정하고 먼저 맏아들 왕수원(王守元)을 보내어 귀순의 뜻을 전하였다. 왕건은 왕수원을 맞이해서 왕씨 성을 사(賜)하고 전택을 후하게 내려주었다.

뒤에 또 아들 왕장명(王長命)을 보내어 군사 600인으로 숙위하게 하고, 이어 자제와 휘하무리를 이끌고 고려에 내조(來朝)하였다.

왕건은 왕순식의 세력권인 명주일대의 전략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동시에 왕순식이 그동안 구축한 여진족에 대한 영향력을 인정하여 파격적 대우로 맞아들여 왕씨성을 하사하고 대광(大匡)을 제수하였다. 아들 왕장명에게도 왕염(王廉)이라는 이름을 내려주고 원보(元甫)에 제수하였다.

935년(태조 18)에 왕건이 후백제의 신검(神劍)의 군대를 토벌할 때에는 명주로부터 기병을 이끌고 고려군에 가담하여 경상북도 구미의 일리천전투(一利川戰鬪)에서 유금필(庾黔弼)·정순(貞順) 등과 함께 중군(中軍)에 배치되어 후백제군을 격파하여 후삼국통일에 큰 공훈을 세웠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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