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염주(鹽州: 지금의 황해도 연안)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성격이 침착하고 용맹스러우며 병법에 밝았다고 한다. 뒤에 궁예가 한반도의 중부지역을 차지하고 후고구려(後高句麗)를 세우자 그 휘하에 들어갔다.
그러나 궁예가 말기에 신하를 함부로 살해하자 이를 피하여 북쪽 변방 골암성(鶻巖城: 지금의 안변 부근)에서 병사 2,000여명을 거느리고 웅거하고, 흑수말갈(黑水靺鞨)과의 교섭을 통하여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며 궁예에 대항하였다. 918년 8월에 왕건이 궁예를 축출한 뒤 예를 갖추어 사자를 보내 초유(招諭)하자 귀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