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진군(碧珍郡: 지금의 경상북도 성주)출신으로 세계(世系)는 알 수 없다. 신라 말기 도적이 도처에서 일어나 노략질이 심하였던 시기에 벽진군의 치안에 힘써 백성을 편안하게 하였다.
왕건이 고려를 건국한 뒤에 이총언에게 사람을 보내어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합하여 화란(禍亂)을 평정할 것을 호소하자 매우 기뻐하며 아들 이영(李永)을 보내어 군사를 거느리고 왕건을 도와 후백제와의 전쟁에 참여하도록 하였다.
왕건은 그것을 고맙게 여겨 대광(大匡) 사도귀(思道貴)의 딸을 이영의 아내로 삼아주며 이영을 벽진군장군에 임명하고 이웃고을의 정호(丁戶) 229호를 더 내려주었다. 또 충주·원주·광주(廣州)·죽주(竹州)·제주(堤州)의 창고 곡식 2,200석과 소금 1,785석을 주는 등 은사(恩賜)를 후하게 하였다.
왕건은 또 서신을 보내어 “자손에 이르기까지 고마운 마음을 변하지 않겠다.”라는 굳은 맹세까지 하였다. 이총언은 감격하여 군사를 훈련시키고 양식을 저축하여 고립된 성을 지키며, 신라와 후백제 간의 전쟁지역 내에서 고려를 위하여 동남쪽의 큰 힘이 되어 후삼국통일에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