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인귀전 ()

설인귀전
설인귀전
고전산문
작품
중국 소설 「설인귀정동(薛仁貴征東)」의 번역소설.
목차
정의
중국 소설 「설인귀정동(薛仁貴征東)」의 번역소설.
내용

활자본·필사본·목판본. 활자본 「백포소장설인귀전(白袍少將薛仁貴傳)」은 중국 소설 「설인귀정동」의 충실한 직역이고, 목판본(京板本) 「설인귀전」은 그것의 축약·개작이다.

당나라 태종 때 용문현에 사는 설영과 아내 반씨 사이에서 설인귀가 태어난다.

인귀는 자라면서 말을 하지 않다가, 15세가 되었을 때 책방에서 잠을 자다가 백호가 달려드는 꿈을 꾸고 나서 드디어 말을 하게 된다. 한편, 태종은 일몽(一夢)을 꾸고 용문현의 백포 장군 설인귀가 장차 동정(東征)에서 자신을 구해 주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인귀는 부모가 죽은 뒤 무예를 익히고 육도삼략을 공부하며, 위급한 사람을 구제하느라 가산을 탕진한다. 인귀는 주림을 견디지 못해 유원외의 집에서 기식한다. 유원외의 딸 금화는 인귀가 귀하게 될 인물임을 예감하고, 인귀에게 비단옷을 주었다가 아버지에게 들켜 집에서 쫓겨난다.

금화는 한 굴에 들어가 피신하던 중 마침 그 곳을 찾아온 인귀를 만나 혼인한다. 인귀는 의형제를 맺은 주청의 권유로 동정에 참가하기로 한다. 태종은 장사귀를 용문현으로 보내 인귀를 찾아오게 하나, 장사귀는 자신의 위치가 흔들릴 것을 염려해 투군(投軍)한 인귀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두 번을 투군했다가 거절당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인귀는 번홍해의 딸을 구해 주고, 방천화극을 얻는 한편 그녀를 부실로 맞아들이게 된다. 다시 세 번째의 투군장을 내니, 장사귀는 인귀를 속이고 설례로 개명하게 한 후에야 그를 받아들인다. 태종은 을지경덕을 원수로, 장사귀를 선봉장으로 삼아 동정에 나선다.

도중에서 인귀는 큰 굴을 만나 그 곳에서 여보살로부터 다섯 가지 보배를 얻는다. 인귀는 이 보배들을 써서 만나는 적들을 모두 물리치나, 장사귀는 이 모든 공을 사위에게 돌리고 황제를 속인다. 태종이 사냥을 하던 중 합소문에게 사로잡히게 된다.

이 때 인귀는 말이 달리는 대로 한 곳에 이르렀는데, 그곳에서 태종을 만나 합소문을 물리치고 태종을 구출한다. 마침내 인귀를 알아본 태종은 장사귀 일족을 잡아 가두고 설인귀를 원수에 봉한다. 설원수가 합소문과 그의 군사들을 몰살시키니 부여 왕이 항복한다. 평요왕에 봉해진 설인귀는 고향에 돌아왔으나 실수로 아들 정산을 쏘아 죽인다.

그러나 운몽동 왕오노조는 정산을 데려와 단약을 먹여 회생시켜 후일에 부자 상봉하도록 한다. 설인귀는 번소저를 맞아들여 두 부인과 함께 부귀영화를 누린다.

의의와 평가

「설인귀전」은 원래 연작 소설로, 「설인귀정동」과 「설정산정서(薛丁山征西)」로 되어 있다.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전자는 「백포소장설인귀전」으로, 후자는 「서정기(西征記)」·「설정산실기(薛丁山實記)」·「번이화정서전(樊梨花征西傳)」으로 번역되어 연작 소설의 형태를 띠고 있다. 「설인귀전」은 18세기 중엽 혹은 그 직후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백포소장설인귀전」은 고전소설 가운데 이른바 영웅소설 혹은 군담소설에 속하는 「유충렬전」·「소대성전」·「장익성전」·「장국진전」 등에 그 영향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그 속편인 「서정기」·「설정산실기」·「번리화정서전」 등은 또 우리의 고전소설들 가운데, 이른바 여걸소설 혹은 여장군소설에 해당하는 「홍계월전」·「정수정전」, 그리고 「황운전」·「옥루몽」 등에 그 영향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한국군담소설의 구조와 배경』(서대석,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85)
『소설의 구조와 실상』(성현경, 영남대학교출판부, 1981)
「설인귀전」(『구활자본고소설전집』6, 인천대학교민족문화연구소, 1983)
「설인귀전」(『고소설판각본전집』4, 연세대학교인문과학연구소, 1973)
「이조번안소설고」(서대석, 『국어국문학』52,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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