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루몽 ()

고전산문
작품
19세기에 남영로가 지은 고전소설.
이칭
이칭
옥련몽
작품/문학
작가
남영로(南永魯)
내용 요약

「옥루몽」은 19세기에 남영로가 지은 고전소설이다. 「옥루몽」은 작품의 구조·주제·사상 등의 측면에서 「구운몽」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는 동시에, 「구운몽」과 사뭇 다른 면모를 보여 주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특히, 「구운몽」이 현실의 삶을 꿈으로 처리하며 부정적인 인식을 보여준 것과 달리, 「옥루몽」은 현실의 삶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점이 큰 차이점이다.

목차
정의
19세기에 남영로가 지은 고전소설.
이본사항

국문 필사본(筆寫本) · 한문 필사본 · 국문 활자본(活字本) · 한문 현토(懸吐) 활자본이 있다. 국문 필사본으로는 국립중앙도서관에 완질본(完帙本) (5권 5책)과 낙질본(落帙本) (전 18책 중 9책)이 있고, 서울대학교 도서관(14책)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15책)에 각각 1본이 있다.

최근의 연구를 통해 「옥루몽」은 한글로 창작되었음이 밝혀졌다. 주5는 「옥련몽」을 한문으로 창작한 뒤 이를 번역해 한글본 「옥련몽」을 편찬했으며, 이 한글본을 바탕으로 「옥루몽」을 창작한 것이다.

단국대학교 율곡기념도서관 나손문고(구 김동욱 소장본)에는 낙질본 6본이 있는데, 그 중 1본은 겉표제가 “六奇錄”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장효현(張孝鉉)이 낙질본 2본(8책, 5책)을 소장하고 있고,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낙질본 1본(전 16책 중 14책)이 있다.

국문 활자본으로는 신문관(新文館, 1910 · 1926) · 보급서관(普及書館) · 회동서관(滙東書館, 1913∼1916년 사이, 1917 · 1924) · 박문서관(博文書館, 1926) · 영창서관(永昌書館, 1929 이전) · 성문당(盛文堂) · 홍문서관(弘文書館)에서 각각 발행한 것이 있다. 한문 현토 활자본은 회동서관(1915) · 덕흥서림(德興書林, 1908 · 1919 · 1920 · 1939) · 보급서관 · 금광서림 · 박문서관 · 적문서관(積文書館, 1924) · 영창서관(1936) · 세창서관(世昌書館, 1962)에서 각각 발행하였다.

「옥련몽」 국문 필사본은 이화여자대학교 도서관(전 26권 13책 중 2책본, 28권 28책 완질본)과 서강대학교 도서관(20권 20책) · 성암고서박물관(誠菴古書博物館, 26권 9책본, 낙질본 1책) · 국립중앙도서관(12권 12책본, 10권 10책본) · 단국대학교 율곡기념도서관 나손문고(구 김동욱 소장, 낙질 14책본, 1책본)에 소장되어 있다. 이외에 개인이 소장한 국문 필사본으로는 장효현(낙질본 7책) · 성현경(28권 28책) · 이종관(낙질본 5책) · 남영희(미완성본 8책)가 각각 소장하고 있는 것이 전한다.

국문 활자본 「옥련몽」으로는 박학서원(1923) · 경성서적조합(1916) · 신구서림(新舊書林, 1922)에서 발행한 「강남홍전(江南紅傳)」과 회동서관(1926) · 신구서림(1922)에서 발행한 「벽성선(碧城僊)」이 있다. 「강남홍전」과 「벽성선」은 국문 활자본 「옥루몽」에서 각각 강남홍, 벽성선과 관련되는 부분만 뽑아 개작(改作)한 것이다. 「옥련몽」은 「옥루몽」의 선행본인데, 중반 부분이 「옥루몽」과 상당히 다른 것으로 보아 개작 과정에서 다른 작품으로 변모된 것으로 보인다.

세책본으로는 동양문고본 「옥루몽」이 현전하는데, 이 작품은 제목은 「옥루몽」이지만 「옥련몽」의 화소(話素)를 차용하는 등 「옥루몽」의 화소와는 다른 방향으로 의도된 개작의 양상을 보여준다.

한편, 1940년 2월에는 조선성악연구회(朝鮮聲樂硏究會)가 「옥루몽」을 창극화하여 제일극장에서 공연한 바 있다. 작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내용

천상계(天上界)에서 옥황상제(玉皇上帝)가 백옥루를 다시 고쳐 짓고 선관(仙官)들을 초대하여 주12을 베풀었다. 이 연회에서 문창성(文昌星)이 취중에 읊은 시 가운데 지상계(地上界)를 그리워하는 면모가 엿보이자, 옥황상제는 지긋이 웃음을 띤다.

문창성이 선녀들인 제방옥녀(帝傍玉女) · 천요성(天妖星) · 홍란성(紅鸞星) · 제천선녀(諸天仙女) · 도화성(桃花星)과 마하지(摩訶池)에 핀 연꽃을 꺾어 술을 마시며 희롱한다. 이에 옥황상제의 밑에 있는 신불(神佛)은 자신의 법력(法力)으로 이들을 인간계(人間界)로 내려보낸다. 그리하여 문창성은 양창곡(楊昌曲)으로, 제방옥녀는 윤 소저(小姐)로, 천요성은 황 소저로, 홍란성은 강남홍으로, 제천선녀는 벽성선으로, 도화성은 일지련으로 각각 태어나게 한다.

한편, 지상계에서는 중국 남쪽의 옥련봉 밑에서 사는 양현(楊賢)이라는 처사(處士)가 마흔이 넘도록 자식을 두지 못하고 있다가, 관음보살(觀音菩薩)의 석상 앞에 가서 기도한 뒤 창곡이라는 사내아이를 얻는다.

양창곡은 과거에 응시하고자 황성으로 가던 길에, 적극적이고 활달한 성격에 남성적 기질을 지닌 기녀(妓女) 강남홍(홍랑)을 만나 인연을 맺었다. 홍랑은 양창곡에게 항주자사(杭州刺史)의 딸 윤 소저를 그의 배필로 추천한다. 윤 소저는 말수가 적고 인자하며 순종의 미덕을 지닌 전통적인 사대부 집안의 여인이다. 홍랑은 양창곡을 황성으로 보낸 뒤, 항주의 주24으로 들어가서 윤 소저의 시녀가 되기를 자원한다. 홍랑과 윤 소저의 둘의 우정은 깊어만 간다.

이 무렵, 소주자사(蘇州刺史) 황공이 홍랑의 미모를 탐하여 연회를 베풀고 홍랑을 겁탈(劫奪)하려 하자, 홍랑은 강물에 투신자살한다. 그러나 윤 소저가 이 일을 미리 예상하고, 잠수를 잘하는 손삼랑이라는 여인을 잠복시켜 비밀리에 홍랑을 구출한다. 윤 소저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홍랑은 어선을 타고 표류하다가 남쪽 탈탈국(脫脫國)에 도착하여 절에 가서 몸을 의탁한다.

한편, 양창곡은 황성에서 편지를 받아보고 홍랑이 자살한 줄 알고 못내 슬퍼한다. 양창곡이 장원급제하여 한림학사(翰林學士)가 되니, 황 각로(閣老)와 노 상서(尙書)가 각각 자기의 딸을 양창곡과 혼인시키기 위하여 양창곡에게 구혼한다. 그러나 양창곡이 이를 거절하고 윤 상서의 딸 윤 소저와 혼인하자, 양창곡은 황 각로의 딸과 혼인하라는 천자(天子)의 명령을 어긴 죄로 하옥된다.

그 뒤 양창곡은 다시 노 상서의 모함으로 강주로 유배된다. 양창곡은 이곳에서 본부 기생으로 음률(音律)을 잘 알며 우아한 여인 벽성선을 만나 가연(佳緣)을 맺는다. 이후 양창곡은 다셧 달 만에 유배 생활에서 풀려나 예부시랑이라는 벼슬을 제수(除授)받고, 천자의 명령에 따라 황 각로의 딸과 다시 혼인한다.

이때 주33이 중국을 침공하자, 양창곡은 대원수(大元帥)로 출전하고, 홍랑은 적국의 지휘관으로 출전함으로써 양창곡과 서로 대치한다. 그러나 홍랑은 상대편 장수가 명나라의 양창곡임을 알고, 명나라 군대의 진영[明陣]으로 도망하여 양창곡과 만나고, 명나라 군대의 부원수(副元帥)가 된다. 한편, 적국인 축융국(祝融國)의 공주 일지련은 원수 홍랑과 접전하다가 생포되어 명나라 군대의 진영으로 오게 된다. 명나라 군대의 진영에서 양창곡을 본 일지련은 사랑하는 정이 생겨, 남만 군대의 진영[蠻陣]으로 돌아가 부왕(父王)을 움직여 명나라에 항복하게 한다. 일지련은 근면 · 검소하고 총명한 여인으로, 강남홍과 벽성선의 장점을 나누어 가진 이들의 중간적 인물이다.

이때 양씨 집안에서는 황 부인이 선랑(仙娘)을 질투한 나머지 벽성선을 암살할 음모를 꾸미나 곧 실패한다. 선랑은 시골의 한 암자로 가서 숨어 살지만, 다시 모함을 받아 온갖 고초를 겪는다. 양창곡이 전쟁에서 이겨서 돌아와 황성으로 들어오니, 천자는 양창곡을 연왕(燕王)에 봉하고, 홍랑을 만성후(蠻城侯)에 봉한다. 또한, 천자가 황 부인의 죄상을 밝혀 처벌하고 유배시키자, 황 부인은 곧 잘못을 뉘우치고 착한 사람이 된다. 이렇게 해서, 연왕 양창곡은 두 명의 부인인 윤 부인(윤 소저) · 황 부인과, 세 명의 첩인 강남홍(홍랑) · 벽성선 · 일지련과 함께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마침내 천상계로 돌아가 다시 선관이 된다.

의의와 평가

이 작품은 64회의 회장체(回章體) 주45로서, 「구운몽(九雲夢)」 분량의 3배나 되는 대장편이다. 조선 후기에 가장 많은 인기를 모은 소설 가운데 하나이다. 이 작품은 구성이 치밀하고 규모가 방대하며 표현력이 빼어날 뿐 아니라 여성들의 성격이 아주 개성 있게 창조되어 있어서, 고전소설 가운데 백미(白眉)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영웅적 주인공 양창곡의 일대기를 중심으로 군담(軍談)이 곁들여지고 있는 영웅소설(英雄小說) · 군담소설(軍談小說)에 해당한다. 그러나 강남홍에 초점을 맞추어 본다면, 여걸소설 혹은 여장군소설에도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옥루몽」은 「구운몽」을 환골탈태(換骨奪胎)한 작품으로 볼 수 있으나, 그 구조나 주제 · 사상 등은 「구운몽」과 사뭇 다르다. 「옥루몽」은 유교 사상을 골격으로 하면서, 불교 및 도교사상을 수용하여 현실과 인생을 긍정적인 시각에서 다루고 있다.

한편 「옥루몽」에서 왕도 정치를 펴면서 과거 시험의 부정을 척결하고 간신(奸臣)들의 악행을 막아 백성을 잘 다스리는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고 있는 것은, 현실 개혁의 의지와 방법을 담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기존 질서가 붕괴하고 새로운 가치관이 형성되는 19세기 중엽에 창작된 것으로, 현실적인 주51에 입각한 인간의 이상과 염원을 구현하고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성현경, 「몽자소설연구·적강소설연구」(『한국소설의 구조와 실상』, 영남대학교출판부, 1981)
차용주, 『옥루몽연구』(형설출판사, 1981)
『장서각고소설해제』(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9)

논문

김남석, 「조선성악연구회의 「옥루몽」 창극화 도정과 창극사적 의의 연구」(『국학연구』 29, 한국국학진흥원, 2016)
김종철, 「옥루몽의 대중성과 진지성」(『한국학보』 61, 일지사, 1990)
성현경, 「옥련몽연구」(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69)
심치열, 「옥루몽연구」(성신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3)
유광수, 「〈옥루몽〉 한글원작설 변증 -정유본 〈옥련몽〉을 중심으로」(『고소설연구』 31, 한국고소설학회, 2011)
유광수, 「세책 〈옥루몽〉 동양문고본에 대하여」(『열상고전연구』 35, 열상고전연구회, 2012)
장효현, 「옥루몽의 문헌학적연구」(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1)
주석
주2

손으로 써서 만든 책. 우리말샘

주3

한 질을 이루고 있는 책에서 권수가 완전하게 갖추어진 책. 우리말샘

주4

한 질을 이루는 책에 몇몇 권이 빠지고 없어 권수가 갖추어지지 아니한 책. 우리말샘

주5

조선 후기의 문인(1810~1857). 호는 담초(潭樵). 문장과 서화에 능하였고, <옥루몽>과 <옥련몽>을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말샘

주6

한문에 토를 다는 일. 우리말샘

주8

소설 따위에서, 이야기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 우리말샘

주11

선경(仙境)에서 벼슬살이를 하는 신선. 우리말샘

주12

낙성을 축하하는 잔치. 우리말샘

주13

중국에서, 북두칠성의 여섯째 별인 ‘개양’을 달리 이르는 말. 학문을 맡아 다스린다고 한다. 우리말샘

주16

법의 공덕력. 불법(佛法)의 위력을 이른다. 우리말샘

주18

‘아가씨’를 한문 투로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19

예전에, 벼슬을 하지 아니하고 초야에 묻혀 살던 선비. 우리말샘

주20

아미타불의 왼편에서 교화를 돕는 보살. 사보살의 하나이다. 세상의 소리를 들어 알 수 있는 보살이므로 중생이 고통 가운데 열심히 이 이름을 외면 도움을 받게 된다. 우리말샘

주24

높은 벼슬아치의 집안. 우리말샘

주26

중국 당나라 때에, 한림원에 속하여 조칙의 기초를 맡아보던 벼슬. 우리말샘

주27

중국 명나라 때에, ‘재상’을 이르던 말. 우리말샘

주28

중국의 진나라 이래 천자와 신하 사이에 오가는 문서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벼슬. 이 벼슬이 점차 높아져서 당나라와 송나라 때에 중앙 정부의 수위(首位)에 앉아 육부의 장관이 되었다가 뒤에는 중앙 정부의 장관이 되었다. 우리말샘

주31

부부 관계나 연인 관계를 맺게 된 연분. 우리말샘

주32

추천의 절차를 밟지 않고 임금이 직접 벼슬을 내리던 일. 우리말샘

주33

예전에, 중국에서 남쪽의 오랑캐라는 뜻으로 남쪽 지방에 사는 민족을 낮잡아 이르던 말. 우리말샘

주34

국가의 전군(全軍)을 통솔하는 최고 계급인 원수를 더 높여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36

전시(戰時)에 임명하던 임시 벼슬. 도원수나 상원수 또는 원수에 다음가는 군의 통솔자이다. 우리말샘

주37

왕자나 공주가 자기의 아버지인 임금을 이르던 말. 또는 다른 사람이 왕자나 공주의 처지에서 아버지인 임금을 이르던 말. 우리말샘

주45

일관된 긴 이야기를 여러 회로 갈라 서술한 소설. 우리말샘

주46

흰 눈썹이라는 뜻으로, 여럿 가운데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나 훌륭한 물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중국 촉한(蜀漢) 때 마씨(馬氏) 다섯 형제가 모두 재주가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눈썹 속에 흰 털이 난 마량(馬良)이 가장 뛰어났다는 데서 유래한다. 우리말샘

주47

전쟁에 대한 이야기. 우리말샘

주48

고인의 시문의 형식을 바꾸어서 그 짜임새와 수법이 먼저 것보다 잘되게 하다. 뼈대를 바꾸어 끼고 태를 바꾸어 쓴다는 뜻에서 나온 말로, 중국 남송의 승려 혜홍(惠洪)의 <냉재야화(冷齋夜話)>에서 유래한다. 우리말샘

주51

모든 일에 개인의 공명(功名)과 이익만을 추구하는 경향이나 태도. 우리말샘

주52

황제가 있는 나라의 서울.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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