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 필사본(筆寫本). 장편본인 규장각본은 30권 15책으로 되어 있고, 고려대학교 도서관과 조동일(趙東一)이 소장하고 있는 단편본은 2권 2책으로 되어 있다.
하늘이 인연을 정해 준 남녀 주인공이 결연(結緣)을 성취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장편본은 인물의 선악(善惡) 구분이 비교적 불분명하며, 여성 인물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이에 반해 단편본은 인물의 선악 구분이 매우 확실하고, 가문 의식(家門意識)과 불교 배척(排斥) 등 유교 이념(理念)이 강화된 면모를 보여 준다.
한 세조 무황제의 태자(太子)는 간신(奸臣)의 모함(謀陷)으로 태자비(太子妃) · 태손(太孫) 부부와 함께 억울하게 자결(自決)하게 된다. 한나라 황실의 후예인 유음은 연과 수 형제를 낳았다. 수는 10여 세가 되었을 무렵의 어느 날 벗을 찾아 성 밖에 나갔다가 날이 저물어 한 집에 이른다. 그곳에서 그는 어떤 노인으로부터 자신이 옛날에 억울하게 죽은 태자의 환생이며, 후일 옥환(玉環)으로 태자비를 만나게 되리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유음은 병이 들어 죽으면서 수에게 한나라 황실을 다시 일으키라는 유언을 남긴다. 수가 27세가 되자 모 부인은 수에게 곽 공의 딸을 취하게 한다. 수는 곽 씨를 사랑하나, 마음속에 옥환으로 맺어질 인연이 있어 기뻐하지 않는다.
이때, 왕망이 스스로를 신황제라 칭하고 나라를 어지럽힌다. 이에 수와 연 형제는 경시황제를 도와, 장군들을 거느리고 나아가 남정북벌(南征北伐)의 공을 세우니 민심(民心)이 수와 연 형제에게 돌아간다. 형제의 이름이 날로 높아지자, 경시황제는 이를 경계하여 연을 죽인다. 이에 민심은 더욱 수에게 기울어지니, 경시황제는 수를 장군에 임명하고 하북(河北)을 평정(平定)하게 한다.
수는 하북을 평정하고 돌아오는 길에 오색 채운(彩雲)에 휩싸인 한 집을 찾아 들어가, 집주인 음 공의 딸이 하늘이 옥환으로 맺어 준 인연임을 알게 된다. 수는 뒷날을 기약(期約)하고 돌아와 왕망의 군사를 물리친다.
수가 돌아오니, 장군들은 수에게 임금의 자리에 오르기를 청한다. 처음에 수는 이를 허락하지 않다가 마침내 임금의 자리에 오른다. 그러자 경시황제는 달아나 버리고 천하는 안정되고 평안해진다.
임금이 된 수는 음 공을 이부상서(吏部尙書)에 임명하고, 옥환의 인연을 이루고자 음 공의 딸을 귀인(貴人)에 봉한다. 그러나 음 상서와 음 소저(小姐)는 임금이 된 수가 옥환으로 맺어질 인연임을 모른 채, 옥환의 인연을 어기게 되는 것을 한탄하며 수의 명령을 거부한다.
수가 이를 알고 음 공에게 옥환을 보내니, 음 소저와 수가 하늘이 정해 준 인연이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수는 귀인이 된 음 소저를 왕비로 삼아야 한다고 여기지만 때를 기다리기로 하고, 음 소저를 극진히 사랑한다.
이 때문에 황후(皇后) 곽 씨는 둘 사이를 질투하여 귀인 음 소저를 죽이고자 하나 실패하고, 황 태후(太后)를 움직여 음 소저를 별실(別室)에 가두게 한다. 임금 수가 이로 인한 슬픔으로 병이 나자, 태후는 할 수 없이 음 소저를 풀어 준다. 음 소저는 황자(皇子) 양을 낳는다. 황후 곽씨는 다시 꾀를 내어 동궁(東宮)과 정궁(正宮)에 저주를 내리는 물건을 묻고, 귀인 음 소저의 아들인 경왕을 죽이고 모든 것을 음 소저에게 덮어씌운다. 태후는 보모(保姆) 윤씨의 거짓 자백을 믿고 음 소저를 유배지로 멀리 귀양 보낸다.
태후와 수의 꿈에 죽은 경왕이 나타나, 자신의 원한(怨恨)을 풀어줄 것을 호소한다. 태후는 황후 곽씨의 죄악(罪惡)을 안다. 하지만 곽씨가 태자의 어머니이고, 과거에 곽씨와 서로 사랑했던 정 때문에 태후는 곽씨를 폐위하지 못한다. 태후가 귀인을 다시 불러들이자, 황후는 귀인을 물속에 들어가게 한다. 귀인은 용왕(龍王)의 도움으로 재생하여 후원(後苑) 온실(溫室)에서 숨어 지낸다.
그러나 황후는 날이 갈수록 투기심이 심해져서 후궁들을 죽인다. 이전에 있었던 황후의 죄가 드러나자, 조정(朝廷) 대신들은 임금에게 황후를 폐하기를 청하는 상소를 올린다. 태후와 수는 황후를 폐하고 귀인을 정궁(正宮)에 봉한다. 태자 강이 동궁의 자리를 사양하니, 태후와 수는 양을 태자에 봉한다. 천자와 황후는 영화(榮華)를 누리다가 같은 날 같은 시각에 함께 세상을 떠난다.
이 소설은 고전소설에서는 드물게 왕실을 배경으로 하여 정비인 황후와 후비(后妃)인 음 귀인 간의 갈등을 그리고 있다. 대체로 적자(嫡子)와 정실(正室)은 언제나 선(善)의 입장에 서고, 서자(庶子)와 후실(後室)은 악(惡)의 입장에 서는데, 이 소설에서는 이것이 뒤집혀 나타나는 것이 특색이다. 그 원인은 주인공 유수(劉秀)의 천정연분이 후비인 음 귀인으로 설정된 데에 있다.
군신(君臣) 간의 관계에서 억울하게 죽은 선 태자의 환생인 유수가 경시황제를 물리치고 황제가 되는 것도 하늘의 뜻이기는 하지만, 이는 다른 고전소설에서도 드물게 볼 수 있는 내용이다.
이 소설은 군신 관계 · 처첩(妻妾)] 관계에 있어서 새로운 측면을 보여 주는데, 이것은 하늘의 이치(理致)를 실현하는 것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태자 부부와 태손 부부가 환생을 통하여 전생의 억울한 한(恨)을 풀고, 전 태자비와 연분을 반드시 맺는 것은, 이 소설이 현실주의(現實主義)에 바탕을 둔 인간의 적극적인 의지를 긍정적으로 생각함을 보여 준다.
이 소설의 작가는 곽후 폐출 사건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다루면서 역사 기록인 『후한서』와 소설인 「동한연의」를 참조하였다. 곽후가 폐위되고 음후가 황후가 된 원인은 『후한서』에 매우 간략히 언급되어 있다. 작가는 이 짧은 기록을 토대로 상상력을 발휘하여, 역사의 공백을 메운다는 뚜렷한 작가 의식을 가지고 소설을 창작한 것이다.
특히 한국의 고소설사에서 17세기 말부터 관측되기 시작한 중국 역사 수용이라는 창작 방식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