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산성 ()

중국 요령 성산산성
중국 요령 성산산성
건축
유적
삼국시대,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좡허시[庄河市]에 있는 둘레 3110m의 고구려 중대형 포곡식 석축 산성.
이칭
이칭
성산산성 전성(城山山城前城)
유적
건립 시기
삼국시대
관련 국가
고구려
둘레
3110m
소재지
중국 랴오닝성 좡허시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성산산성(城山山城)은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좡허시[庄河市]에 있는 둘레 3110m의 고구려 중대형 포곡식 석축 산성이다. 후성산산성과 함께 벽류하(碧流河)를 사이에 두고 요동의 방어선이 차단하지 못한 적군이 동남진하거나 요동반도 남단에 상륙한 적이 북쪽으로 진출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축조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내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형에 따라 성벽을 쌓아 서북쪽이 길게 튀어나와 있다. 성벽은 쐐기꼴 모양의 돌과 북꼴 모양의 돌을 맞물리게 쌓는 전형적인 고구려의 축성술을 보여준다.

정의
삼국시대,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좡허시[庄河市]에 있는 둘레 3110m의 고구려 중대형 포곡식 석축 산성.
발굴 경위 및 결과

2005년 다롄시 문물고고연구소[大連市文物考古硏究所]에서는 성산산성(城山山城)에 대한 전체적인 현황 조사 및 실측 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건립 경위

성산산성은 고구려 광개토왕이 랴오둥[遼東] 지역을 장악한 후, 고구려 후기에 들어 랴오둥 지역을 방어하기 위해 축조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변천

고구려가 성을 쌓고 사용한 이후, 성의 내부에는 명나라 시대에 법화사(法華寺)가, 민국(民國) 연간에 도교 사원인 오로궁(五老宮)이 들어섰다. 2000년에는 중국에서 성산산성을 관광지로 개발하면서 성벽 전체를 복원하였고, 그 과정에서 현상(現狀)이 많이 변경되었다.

형태와 특징

성산산성은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좡허시[庄河市]의 서부에 있는 청산진(城山鎭)에 소재한 성산(城山)에 축조된 고구려의 포곡식(包谷式) 석축 산성이다. 성벽의 전체 둘레는 3110m이다. 이 성은 황해로 흘러들어가는 벽류하(碧流河)의 동쪽 연안에 있으며, 성의 서북쪽에는 벽류하의 지류(支流)인 협하(夾河)가 흐르고 있다. 연안로를 따라 고려 성산성(高麗城山城)이 있는 카이저우[蓋州]로 연결된다. 산성의 건너편인 벽류하 서쪽으로는 또 하나의 성산산성이 있는데, 이 성은 후성산산성(後城山山城)이라 불린다. 이 때문에 성산산성은 성산산성 전성(城山山城前城)으로 불리기도 한다.

내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진 성산산성은 북쪽과 서쪽이 높고, 남쪽과 동쪽이 낮다. 지형에 따라 성벽을 쌓았기 때문에 산의 서북쪽은 성벽이 길게 튀어나와 있다. 성벽은 쐐기꼴 모양의 돌과 북꼴 모양의 돌을 맞물리게 쌓았으며, 외성벽은 '품(品)'자형으로 정연하게 올렸다. 성의 사면은 내탁식으로 평지나 성문 주변은 협축(夾築)식으로 축조했다. 성벽의 보존 상태가 가장 양호한 동쪽 성벽의 경우 남아있는 성벽의 높이는 9.5m 가량 된다. 동북쪽 봉우리에 쌓은 내성의 둘레는 약 120m이다. 서북쪽의 성벽은 내성과 외성을 겸하고 있다.

성산산성에 설치된 성문은 모두 6개로, 남문이 정문인데 이 문은 실제로는 동남쪽 방향에 있다. 차량 통행을 위해 성문을 이전하여 새롭게 복원하면서 길이 4.4m, 너비 6~7m였던 원래의 문지는 훼손되었다.

성산산성 내부에서는 치(雉) 1개소, 점장대 1개소, 망대(장대지) 2개소, 대형 석축 저수시설 1개소 및 건물지가 다수 확인되었다. 치는 동문지 근처에 있는데, 네모난 형태이며 기단부의 길이는 9m, 너비 8m, 남아있는 높이는 3.4m이다. 치의 기단부는 들여쌓기 방식으로 축조하였다. 이밖에 연개소문의 여동생과 관련된 전설이 전하는 소장대(梳妝臺)라 불리는 망대(望臺, 장대)가 있다. 형태는 정방형(正方形)이며, 기저부 한 변의 길이가 8m이고, 상단부는 5.5m이다. 석축부의 높이는 2m로 잘 다듬어진 돌로 8~9단을 들여쌓기 방식으로 올렸다. 시펑[西豊]의 성자산산성(城子山山城)과 지안[集安]의 환도산성(丸都山城)에서도 이와 유사한 구조물이 확인된다.

내성과 성문 주변, 망대 인근에서 적갈색 승문(繩文) 기와편을 비롯한 연화문와당 등 고구려시대 유물이 수습되었다. 고구려 토기 파편과 철제 낫, 창, 화살촉, 차축두(車軸頭) 등의 철기도 함께 출토되었다.

의의 및 평가

성산산성은 랴오둥을 방어하기 위하여 벽류하(碧流河) 유역에 만든 고구려의 중대형 포곡식 석축 산성이다. 성산산성은 인근의 후성산산성과 함께 요동의 방어선이 차단하지 못한 적군이 동남진하거나 요동반도 남단에 상륙한 적이 북쪽으로 진출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축조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참고문헌

원전

단행본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조선고고학전서) 고구려의 성곽』 27(진인진, 2009)
양시은, 『고구려 성 연구』(진인진, 2016)

논문

大連市文物考古硏究所, 「大連城山山城2005年調査報告」(『東北史地』 2006-4, 2006)
王禹浪·‚王文軼, 「大連地區的高句麗山城」(『哈爾濱學院學報』 32-6, 2011)
집필자
양시은(충북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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