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 설성산성(利川 雪城山城)은 설성산 정상부를 둘러싸고 6세기 후반에 축조한 신라의 포곡식 석축 산성이다. 성내에서 백제 토기가 다수 출토되어 백제가 초축한 성을 신라가 개축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조사 결과 한성기 백제의 성벽은 확인되지 않았다. 축성 기법이나 성의 구조 등으로 볼 때 이 산성은 6~7세기 때 전형적인 신라 석성의 특징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 산성은 6세기 중반 한강 유역으로 진출한 신라가 왕경과의 주요 교통로상에 있는 이천 지역을 방어하기 위해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 산성은 고려시대까지 사용되었다.
이천 설성산성(利川 雪城山城)에 대한 지표조사는 1982년과 1997년 그리고 1999년에 이루어졌다. 이후 2001년 1차 발굴 조사(發掘調査)를 시작으로 2004년 4차 발굴 조사까지는 단국대학교 매장문화재연구소가 담당하였다. 2008년 5차 발굴 조사는 한백문화재연구원에서 실시하였으며, 2014년 6차 조사는 가경고고학연구소가 진행하였다.
13차 발굴 조사는 서문지를 포함한 서벽 구간과 그 안쪽의 평탄지를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조사 결과 서문지는 이천 설성산성이 초축된 이후 신라와 고려시대에 걸쳐 개축(改築)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성내에서는 한성기 백제의 토기편과 주거지(住居址) 및 저장 수혈 등이 발견되었다. 4차 조사는 동문지와 주변 성벽을 대상으로 실시하였다. 그 결과 동문지는 대부분 유실되었으며, 성벽은 서문지와 마찬가지로 두 차례에 걸쳐 수축(修築)한 것이 확인되었다. 5차 조사는 동문지 안쪽을 대상으로 진행하였다. 이곳에서 910세기의 건물지(建物址) 3동을 확인하였다. 마지막으로 6차 조사는 동문지 일대 성벽을 조사한 것으로 2014년 가경고고학연구소에 의해 진행되었다.
이천 지역은 경주에서 충주를 거쳐 한강 유역까지 도달할 수 있는 경주에서 한강을 잇는 주요 교통로이다. 6세기 중반 한강 유역을 차지했던 신라는 왕경이었던 경주에서 한강까지 연결되는 이천 지역을 방어하고 다스리기 위해 6세기 후반에 이천 설성산성을 축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천 설성산성은 7세기를 전후한 시점에 신라가 축조한 이후 통일신라기에도 치소성(治所城)으로 계속 사용되었다. 서문지에서는 두 차례에 걸쳐 성을 개축했던 흔적이 발견되었는데, 이곳에서 고려시대의 유물이 출토된다는 점에서 이 산성은 고려시대에도 여전히 치소 혹은 몽고의 침입에 대비하는 성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천 설성산성은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과 설성면 사이에 있는 해발 290m 설성산 정상부와 계곡부를 아우르는 포곡식(包谷式) 산성이다. 산성은 동쪽이 낮고 서쪽이 높은 형태이며, 산성의 평면 모양은 타원형에 가깝다. 산성의 정상부에서는 이천, 여주, 죽산, 음성까지 일대 지역을 넓게 조망할 수 있다.
지형을 따라 성벽을 쌓았기 때문에 계단 형태로 기반암을 굴착한 다음 흙다짐을 하는 방식으로 성의 기저부를 조성하였다. 체성벽은 외벽만 쌓아올리는 내탁식뿐 아니라 외벽과 내벽을 함께 쌓아올리는 협축식(夾築式)이 모두 확인되었으며, 협축식으로 쌓은 구간이 더 많았다. 외벽은 장방형(長方形)으로 치석(治石)한 석재를 '품(品)'자형으로 놓으며 바른층쌓기로 올렸다. 내벽의 1~2단은 외벽과 같이 잘 다듬은 성돌을 사용하였지만, 위쪽으로는 거칠게 다듬은 성돌 사이로 소형 할석(割石)을 넣어 메꾸는 방식으로 축조하였다. 외벽에는 체성벽을 지탱하기 위한 보축 성벽이 덧붙여졌다.
한편, 계곡부의 성벽에는 신라시대 석축 산성에서 주로 보이는 평면 형태의 사다리꼴 배수구가 설치된 것이 확인되었다. 또한 산성의 성문은 사다리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현문식(懸門式) 성문의 형태를 하고 있다.
이 밖에 성내에서 건물지와 집수 시설(集水施設), 목곽고(木槨庫) 등이 확인되었다. 성 내부에는 백제 한성기의 수혈식 주거지와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의 건물지가 발견되었다. 또한 설성산 정상부에서 북동쪽으로 내려온 경사지에는 집수 시설이 마련되어 있었다. 집수 시설은 풍화 암반층을 굴착한 후 외곽은 점토로 두르고, 벽체는 할석으로 조성하였으며, 안쪽은 점토를 채워넣은 방식으로 만든 것이 확인되었다. 저장 시설인 목곽고(木槨庫)는 산의 사면에 위치하며, 풍화 암반층을 굴착한 다음 바닥면을 고운 점토로 깔고 '목(目)'자 형태의 목제틀을 배치하여 만들었다.
이천 설성산성은 성내에서 백제 토기가 다수 출토되어 백제가 초축한 성을 신라가 개축한 것으로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발굴 조사 결과 한성기 백제의 성벽은 확인되지 않았다. 오히려 성을 쌓은 축성 기법이나 성의 구조 등으로 볼 때 이천 설성산성은 6~7세기대 전형적인 신라 석성의 특징을 보여준다. 출토 유물 등으로 볼 때 신라가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면서 경주에서 충주를 거쳐 서울로 향하는 주요한 교통로에 있는 이천 지역을 방어하고 다스리기 위해 6세기 후반에 축조한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