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경보(敬甫). 성담명(成聃命)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공조판서 성운(成雲)이고, 아버지는 진주판관 성수국(成壽國)이며, 어머니는 동래정씨로 정지영(鄭之英)의 딸이다.
1564년(명종 19) 사마시에서 생원과 진사에 모두 합격하였다. 1577년(선조 10) 알성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권지가 되었다. 이어 검열·주서·봉교·감찰을 거쳐, 예조·병조의 좌랑을 지냈고, 성절사(聖節使)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삼도해운판관(三道海運判官)·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사간원정언, 병조·호조의 정랑을 거쳐 황해도암행어사로 나가 배천군(白川郡)에 오랫동안 쌓여 있던 원옥(寃獄)을 해결함으로써 가뭄에 비가 내렸다는 일화를 남겼다.
다시 예조정랑·고산도찰방(高山道察訪)·성균관의 직강(直講)·사예(司藝)를 거쳐, 한성부서윤·수원부사·청주목사·춘천부사·덕원부사·종부시정·사섬시정 등을 지냈다. 1600년 전라도추고경차관(全羅道推考敬差官)으로 나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다가 은진에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