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현지(顯之). 1783년(정조 7)에 음양과(陰陽科)에 등과한 뒤 관상감관(觀象監官)을 거쳐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이르기까지 천문분야의 중요한 직책을 맡았다.
그의 업적으로는 1795년(정조 19)에 당시의 관상감관인 서호수(徐浩修)와 함께 『국조역상고(國朝曆象考)』를 편찬하였고 1818년(순조 18)에는 단독으로 『서운관지(書雲觀志)』를 편찬한 것을 들 수 있다.
이 두 책은 당시의 천문학과 그에 관련된 제도·기술 등을 포괄적으로 서술한 것으로, 한국의 천문학사 연구를 위하여 가장 중요한 자료에 속하는 것으로 꼽히고 있으며, 이 책들을 편집한 그는 한국 천문학사상 귀중한 업적을 남긴 수준 높은 천문학자였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