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합천(陜川). 속명은 이영주(李英柱). 호는 퇴옹(退翁). 법명은 성철(性徹). 경상남도 산청 출신. 아버지는 상언(尙彦)이며, 어머니는 진주(晉州) 강씨(姜氏)이다. 8년 동안 장좌불와(長坐不臥)를 행하는 등 평생 철저한 수행으로 일관하였으며 돈오사상(頓悟思想)과 중도사상(中道思想)을 설파하였다.
성철은 열 살 무렵부터 유서(儒書)를 읽고 각종 경서를 독파하였다. 1930년진주중학교를 졸업하고 청소년기에 이르자 동서양의 철학 · 문학 · 논리학 저서를 탐독하였다. 1935년경영가(永嘉)의 「신심명증도가(信心銘證道歌)」를 읽고 지리산의 대원사(大願寺)에 가서, 거사로서 수행하다가 출가하였다.
해인사 백련암에서 혜일(慧日)을 은사로 모시고 수계 · 득도한 뒤, 10년간 금강산의 마하연사, 수덕사의 정혜선원, 천성산의 내원사, 통도사의 백련암 등에서 안거를 지냈다. 1940년 29세 되던 해에 동화사 금당에서 동안거 중 견성하고, 1941년부터 1963년까지 송광사, 파계사 성전암, 봉암사, 묘관음사, 문수암 천제굴 등에서 수십 회 안거를 지냈다.
1965년 문경 김룡사(金龍寺) 하안거 때는 첫 대중법문으로, 『육조단경』, 『금강경』, 「증도가」 및 중도이론을 설법하였다. 1966년 해인사 백련암으로 옮겨가 주석하였고, 1967년에는 해인총림 초대 방장으로 취임하였다.
방장 취임의 임무를 다하기 위하여 유명한 ‘백일법문(百日法門)’을 설하였는데, 이것은 불교의 중심 사상인 중도사상을 체계화한 것이다. 1981년조계종 제7대 종정으로 추대되었으나 추대식에 참여하는 대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법어를 발표하였다.
성철은 평소 제자들을 직접 지도하면서 잠을 적게 잘 것, 말하지 말 것, 책을 보지 말 것, 간식을 먹지 말 것, 돌아다니지 말 것 등을 권하였다. 성철 자신도 청빈하게 생활하며 소금기 없는 음식을 먹고 작은 암자에서 살았다.
승가의 수행에서는 돈오돈수(頓悟頓修)를 주장하여, ‘견성(見性) 방법은 불조(佛祖) 공안을 실참실구(實參實求)하는 것이 첩경’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공안 참구 과정에서의 자기 점검의 기준으로 동정일여(動靜一如) · 숙면일여(熟眠一如) · 몽중일여(夢中一如)의 삼관돌파(三關突破)를 제시한다.
1976년『한국불교의 법맥』을 출간하여 조계종 법맥을 밝혔고, 1981년『선문정로(禪門正路)』를 비롯하여, 1982년『본지풍광(本地風光)』, 『돈오입도요문돈』, 1986년 『신심명증도가』, 1987년 『자기를 바로 봅시다』, 『(돈황본)육조단경』, 1988년『영원한 자유』, 1992년『백일법문』, 1993년『선문정로평석(禪門正路評釋)』 등의 저술을 남겼으며, 또 그의 지도하에 선림고서총서 전 37권을 번역 · 발간하였다.
1993년 11월 4일 열반하였으며, 다비 후 진신사리가 수습되었다.
그의 제자들은 백련불교문화재단에서 퇴옹성철대종사기념사업회를 만들어 유업을 계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