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산문집 ()

유교
문헌
조선 후기부터 대한제국기까지 생존한 학자, 김기호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15년에 간행한 시문집.
정의
조선 후기부터 대한제국기까지 생존한 학자, 김기호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15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1915년 김기호의 손자 김용복(金溶馥)과 조병규(趙昺奎) 등이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조병규의 서문, 권말에 이훈호(李熏浩)·조긍섭(曺兢燮)·김용복 등의 발문이 있다.

서지적 사항

4권 2책. 목활자본. 연세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내용

권1에 부(賦) 1편, 시 221수, 권2에 서(書) 18편, 잡저 19편, 권3에 서(序) 9편, 기(記) 3편, 발(跋) 2편, 잠명(箴銘) 20편, 상량문 1편, 제문 6편, 권4에 부록으로 가장·행장·유사·묘갈명·묘표가 각 1편, 만사 38편, 제문 4편, 본교사림정경부장(本校士林呈京部狀) 1편, 소산재기(小山齋記) 3편, 낙천시고서(樂川詩稿序) 1편, 이제시화첩(禰祭詩和帖)·낙천시화첩(樂川詩和帖)·소산재시화첩(小山齋詩和帖)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잡저에는 심성이기론(心性理氣論)과 함께 여러 경전의 대요(大要)를 하나의 그림으로 그려 보다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 「대학삼강팔조도(大學三綱八條圖)」·「중용강령도(中庸綱領圖)」·「중용달도달덕도(中庸達道達德圖)」·「중용구경도(中庸九經圖)」·「맹자사단도(孟子四端圖)」·「맹자진심존심도(孟子盡心存心圖)」·「논어구사도(論語九思圖)」·「서무일도(書無逸圖)」 등이 있다.

또 『대학』의 「성의장(誠意章)」·「정심장(正心章)」 및 『중용』의 「성명장(誠明章)」 등 사서(四書)의 몇몇 장절(章節)에 있어 선유(先儒)들이 무리하게 장과 절을 나눈 것에 대해 의문을 제시하고, 이를 과감히 비판해 ‘용학(庸學: 『중용』과 『대학』)’의 해석을 새로이 시도한 「답용학발문(答庸學發問)」이 있다. 이것은 당시 영남 남부 지방 사림의 독특한 학풍과 함께 우리나라 후기 유학사의 또 다른 일면을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된다.

서(書)에는 스승인 허전과 복제(服制)를 비롯한 각종 예제(禮制)에 관해 수년간 논변한 「상성재선생문목(上性齋先生問目)」 등이 있다. 또 당시 영남 유림인 이종기(李種杞)·조병규 등과 더불어 이황(李滉) 이후 우리나라 여러 학자의 이기설에 대한 장단점을 비교, 종합해 논설한 것이 있다.

이 밖에도 발 가운데 「서동사후(書東史後)」는 신라의 삼국 통일은 고구려의 옛 강역을 버리고 반도의 한 귀퉁이만 차지한 것이어서, 나라의 판도를 스스로 줄였을 뿐만 아니라 국기마저 다지지 못하게 되었다고 깊이 통탄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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