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출생. 한국영화 초창기부터 촬영기사로 두각을 나타냈으며, 때로는 제작·기획자로서 또는 현상기사로서 활약하였다.
「사랑을 찾아서」(원명: 두만강을 건너서, 1928)·「사나이」(1928)·「벙어리 삼룡」(1929)·「바다와 싸우는 사람들」(1930)·「수일과 순애」(1931)·「갈대꽃」(1931)·「개화당이문(開化黨異聞)」(1932)·「종로」(1933)·「강건너 마을」(1935)·「역습」(1936)·「칠번통소사건(七番通小事件)」(1936) 등의 무성영화 작품을 촬영하였다.
일제말 조선총독부의 탄압과 일본어사용 강요로 은퇴상태에 있었으나, 광복 후에는 항일계몽영화에 전념하였다. 「윤봉길의사」(1947)·「유관순」(1948)·「안창남비행사(安昌男飛行士)」(1949)·「애국자의 아들」(1949) 및 기록영화로 「고려방직」(1949)·「육군포병학교」(1951) 등이 있으며, 6·25사변 뒤에는 주로 현상소운영에 종사하였다.
애국열에 불타는 영화인동지들과 ‘계몽영화협회’를 설립하여 민족계몽에 열성을 다하다가, 신병으로 오랜 기간 영화계를 떠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