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권 4책. 목판본. 1926년 후손 효필(孝弼)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이상영(李商永)의 서문과 권말에 후손 원옥(元玉)의 발문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
권1∼3에 악부가(樂府歌)·부(賦)·기유(記遊)·시·만사 등 451수, 권4에 소(疏) 6편, 권5·6에 서(書) 5편, 잡저 42편, 서(序) 11편, 권7에 기(記) 27편, 권8에 명(銘) 5편, 찬(贊) 6편, 송(頌) 2편, 계(戒) 1편, 축문 6편, 제문 9편, 고유문(告諭文) 1편, 비문 1편, 묘지명 1편, 행장 3편, 전(傳) 2편, 부록으로 연보·묘갈명·행장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에는 사율이나 절구보다는 고시 장편이 많은데, 고체·근체를 막론하고 시격(詩格)이 높다.
소 중 「체소(髢疏)」는 당시 부녀자들의 머리 장식용이던 다리[加髢]가 성행하여 사치와 낭비가 심한 점을 지적하고 이에 대하여 조정에서 거체령(去髢令)을 내린 것을 적극 지지한 내용이다. 당시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글이다. 「경술소(庚戌疏)」는 1790년(정조 14) 서북 지방의 참담한 기근상에 관하여 언급, 이에 대한 조정의 대책을 촉구한 것이다.
잡저에는 「제설(祭說)」·「사평(史評)」·「경해(經解)」 등 예학·역사·경학에 관한 논설이 있고, 이밖에 예양(豫讓)·한신(韓信)·노자(老子)·장자(莊子) 등 중국 고대 인물들에 대하여 평한 글이 있다. 기는 국내의 명승고적지를 유람하고 쓴 것이 대부분이다.
제문 중 영산강의 강신(江神)에 대한 제문인 「제영산강신문(祭榮山江神文)」은 1786년 저자가 청암찰방(靑巖察訪)에 제수되어 임지로 가던 중 영산강에서 왕으로부터 받은 인신(印信)을 물에 빠뜨리고 찾지 못하자 강신에게 돌려줄 것을 호소한 내용이다. 사람들은 이 제문을 당나라의 한유(韓愈)가 쓴 「악어문(鰐魚文)」과 같다고 칭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