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등은 은솔(恩率)이다. 학자·승려·와박사(瓦博士)·화공(畵工) 등을 인솔하고 일본에 건너가 문화를 전파한 사신이다. 일본은 불교가 전래되자 이에 대한 찬반론으로 조정세력이 크게 두 갈래로 나누어져 있었다.
587년(위덕왕 34)에 찬불론자의 중심인물인 소아마자(蘇我馬子)는 반불론의 중심인물인 모노노배(物部守屋)를 죽이고 완전히 반불론을 일소하여 여기에 적극적으로 불교의 융성과 사찰의 건립에 주력하게 되었다.
그래서 백제는 일본의 요청에 의해서 588년에 승려 혜총(惠聰)·영근(令斤)·혜식(惠寔) 등을 시켜서 불사리(佛舍利)를 전하게 하였다. 이어서 백제는 은솔 수신을 수석으로 하고 덕솔(德率) 개문(蓋文)과 나솔(奈率) 복부미신(福富味身)을 부사로 하여 신물(信物)을 가지고 일본에 건너갔다.
이 때 수신 등은 사리(舍利)와 더불어 승려 영조율사(聆照律師)·영위(令威)·혜중(惠衆)·혜숙(惠宿)·도엄(道嚴)·영개(令開) 등과 사공(寺工)·태량미태(太良未太)·문고고자(文賈古子)·노반박사(鑪盤博士)·장덕(將德)·백매순(白昧淳)과 와박사·마내문노(麻奈文奴)·양귀문(陽貴文)·능귀문(倰貴文)·석마제미(昔麻帝彌)와 화공·백가(白加) 등을 대동하고 가서 이들을 일본에 건네주었다.
당시 일본 조정의 실권자인 소가는 백제에서 건너온 이들 승려를 초청하여 수계(受戒)에 관한 법 등을 배우고, 또 선신니(善信尼) 등을 보내어 수신에게 학문을 배우게 하였다. 이를 계기로 하여 나라지방(奈良地方) 최초의 사찰인 법흥사(法興寺 : 뒤의 飛鳥寺)의 건립에 착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