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9∼1493년. 동판에 채색. 세로 13.5㎝, 가로 17㎝.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아미타여래의 설법 장면을 도회(圖繪)한 것이다.
동판에 붉은 밑바탕 칠을 한 뒤 화면 중앙에 삼존좌상(三尊坐像)과 4보살·4비구(四比丘)를 묵선(墨線)으로 그리고 채색한 것이다. 불감 양 옆면에도 마멸은 매우 심하지만 단독의 보살도가 그려져 있다.
아직도 적색과 녹색의 채색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밝고 부드러운 중간색으로 엷게 채색해서 가늘고 힘이 있는 유려한 필선이 드러나 보인다. 신체에 금채(金彩)를 한 불·보살·비구 등의 윤곽선도 금선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장식적인 요소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고려 불화에 유행하던 귀족풍의 장식성이 여전히 남아 있는 예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잔잔한 구름을 배경으로 하여 청문중(聽聞衆)이 팔각의 연화대좌(蓮華臺座)에 결가부좌(結跏趺坐)한 본존(本尊)을 둘러싸고 법을 청하여 조용히 듣고 있는 모습은 상하가 뚜렷하게 구분되는 2단 구도의 고려시대 설법도와는 구별된다.
즉, 경변상도(經變相圖)에서 발전된 것으로 보이는 조선조 불화의 새로운 구도를 보여 주고 있다. 16세기경의 원형 구도나 조선 후기의 군도식 구도(群圖式構圖)와는 또 다른 반원형 구도를 사용하고 있다.
여러 사료(史料)와 금동불감 안에 봉안되었던 본존불좌상의 명문에 의하여 볼 때, 수종사는 1459년(세조 5년)에 창건되었다. 그리고 이 유물들은 당시까지 생존해 있던 후궁인 명빈 김씨(明嬪金氏)에 의해 시주된 것임이 확실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불화의 연대는 일단 1459년 이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불상의 명문 외에도 성종의 후궁들이 발원한 1493년(성종 24년)의 복장(腹藏)이 발견되었다. 그러므로 이 해에 조성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 불화는 현재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조선 초의 불화인 동시에 조성 연대가 밝혀진 왕실 발원의 설법도이다. 그래서 조선 초기 불교 회화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