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구(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수종사의 팔각오층석탑의 1층 탑신석(塔身石) 및 기단 중대석(中臺石) 안에서 각각 발견된 것으로, 이 15구의 금동불상의 양식은 크게 조선 전기와 후기의 것으로 나누어진다.
조선 초기의 작품은 모두 3점으로, 본존인 금동불좌상과 반가사유형(半跏思惟形)의 보살상, 손에 구슬을 들고 머리에 두건을 쓴 보살좌상이 삼존불의 형태로 금동불감(金銅佛龕) 안에 봉안되어 있었다.
이 가운데 본존불은 복장문(腹藏文)에 의하면 1493년(성종 24년) 명빈 김씨(明嬪金氏)가 시주한 석가불상으로, 좁은 무릎 폭, 사각형적인 상체, 작아진 머리, 각이 진 어깨와 어깨의 옷주름, 팔의 Ω자형 주름, 평행적인 군의(裙衣)의 상단, 몇 번 감은 띠 매듭 등 고려시대 불상 양식에서 진전된 조선 초기 불상 양식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뾰족한 육계(肉髻)에 정상 계주(頂上髻珠)의 표현은 새로운 양식으로 중국 명나라의 양식이 반영된 것이다. 이 불상과 같이 봉안된 반가보살상도 이와 비슷한 양식적 특징을 보여 준다. 하지만 이 두 불상이 크기라든가 존명(尊名)에 있어서 서로 일치하지 않으므로 한 조로 제작된 것은 아닌 듯하다.
이 삼존불 외의 불·보살상은 모두 조선 후기의 작품이다. 1628년(인조 6년) 정의대왕대비(貞懿大王大妃)가 주조하였다는 명문이 뚜렷이 새겨진 금동비로자나불좌상과 함께 기단 중대석에서 발견된 불상 8구와 1층 옥개석에서 발견된 4구 등 모두 12점이 이에 속한다.
이 중 1628년의 금동비로자나불좌상은 머리와 상체의 크기가 비슷하고, 상체는 뒤로 젖히고 목은 앞으로 쑥 내민 불안정한 자세를 취하고 있어 기묘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사각형적인 풍만한 얼굴에 눈은 거의 감다시피 하고 만면에 웃음을 띤 명랑한 얼굴은 일반적인 조선시대 불상의 근엄한 표정과는 달리 친근한 느낌을 준다.
육계가 구별되지 않는 두루뭉술한 머리 모양에 중앙 계주와 정상 계주가 함께 주조된 점, 밭은 목, 법의(法衣)의 표현 등은 1482년 작인 목조불좌상(국립중앙박물관 소장)과 비슷하다. 그리고 손의 모양, 낮은 삼각형 대좌 등은 불회사건칠비로자나불좌상(15세기 중엽)과 비슷하여 조선 전기 불상의 영향을 받은 후기 조각의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이 밖에 다양한 형태를 지닌 나머지 11구의 불·보살상들도 조선 후기의 작품으로 비로자나불상과 같은 양식적인 특징을 보여 준다.
이 15구의 금동불상들은 조선시대 전기와 후기의 불상 양식을 반영하고 있는 작품으로서, 조선시대의 억불정책 아래서 왕실의 비빈(妃嬪)들에 의하여 불사(佛事)가 성행되었음을 알려 주는 귀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