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으로 왕명을 전하는 일을 맡아보았다. 선전관의 기원은 고려 충렬왕 때 소식을 선전하고 전령(傳令)을 관장하도록 개설된 바 있고, 조선 초기 8인의 선전관을 두었다. 처음에는 궁정내 윤직을 맡았으며 뒤에 관부로 설립되어 선전관청이 되었다.
영조 때 직원을 21인으로 늘리고, 다시 25인으로 증원하였다. 편제는 수석(首席 : 3품 당상관) 1인, 참상관(參上官) 7인, 참하관(參下官) 14인과 문관 당상관 3인을 겸임하게 한 바 있고, 뒤에 78인으로 정원이 증가되기도 하다가 1882년(고종 19)에 혁파되었다.
이식(李植)의 선전관청 제명기(題名記)에 “선전관은 본래 숙위하는 관으로 왕의 표신(標信)과 부절(符節)을 받들어 선전한다. 그러므로 지망(地望)이 제일 높다. 선전관청이 소재한 위치는 액문(掖門 : 내시관서) 밖에 있고, 정방(政房 : 賓廳인 최고 議政處를 말함.)의 우(右)편에 있다. 좌우(左右)의 사(史)가 왕의 출입에 시종(侍從)하니 은례(恩禮)가 특이하다.”고 되어 있다.
승전선전관은 선전관청의 선전관의 정원이 대체로 25인으로 구성되었는데, 이 가운데 4인 또는 8인이 교대로 임무를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