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암집 ()

신암집
신암집
유교
문헌
조선 후기부터 대한제국기까지 생존한 학자, 박응한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19년에 간행한 시문집.
정의
조선 후기부터 대한제국기까지 생존한 학자, 박응한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19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1919년 박응한의 아들 박경문(朴景聞)이 편찬하였다. 권두에 최중건(崔中建)의 서문이 있다.

서지적 사항

2권 1책. 필사본. 규장각 도서에 있다.

내용

권1에 시 105수, 권2에 책(策) 1편, 소(疏)·서(序) 10편, 기(記)·의(義)·논(論)·제문·서(書) 각 1편, 부록으로 묘갈명 등이 실려 있다.

시는 천마산(天摩山)·만월대(滿月臺) 등 명승지나 유적지를 벗과 함께 유람하며 지은 것, 매화·국화·달 등 자연을 노래하며 회포를 풀고 벗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 등이 있다. 이 밖에 조선 전기의 문신 유영(柳穎)이 지어 권근(權近)이 윤색하고 정인지(鄭麟趾)가 발(跋)을 붙인 「상대별곡(霜臺別曲)」을 수록한 후, 경앙하는 뜻을 표현하기 위해 자신의 시를 한 수 덧붙이고 한글로 토를 단 시도 있다. 최숙정(崔淑精)·윤속(尹涑) 등의 시에 차운(次韻)하였고, 이상학(李象學)·김현봉(金顯鳳)·김응관(金應觀) 등의 시에 화운(和韻)하였다.

책은 1862년 철종이 삼정(三政)의 폐단을 시정하고자 구언(求言)하였을 때에 지은 것이다. 절검을 바탕으로 하고 인재를 등용하는 데 힘써야 한다고 주장한 글이다. 상소 가운데 1884년에 올린 「의시폐소(擬時弊疏)」는 사치 풍조로 말미암아 경비가 부족하고 도둑이 생긴다고 지적하면서, 근검해야 이러한 폐단을 없앨 수 있다고 주장한 내용이다.

서(序)는 대개 현릉·장릉 등 8개 능의 영을 지내면서 능지(陵誌)·재관선생안(齋官先生案)·능사례(陵事例) 등 능에 관계되는 문헌을 새로 편찬하거나 보충하고, 그러한 사실을 밝혀 놓은 것이다. 「여현릉위전신비기(麗顯陵位田新備記)」는 고려 태조를 모신 현릉을 수리한 일, 차후의 수리비용을 마련하기 위하여 위전(位田)을 마련하게 된 경위, 능 근처에 사는 왕씨의 호환(戶還)을 면제한다는 내용을 밝힌 것이다.

의는 『대학』에 나오는 구절인 ‘명명덕(明明德)’을 풀이한 글이다. 논의 「개성관리영구폐론(開城管理營捄弊論)」은 인문 지리적인 여건으로 항상 경비가 부족한 개성부에 풍덕을 이속시키자는 논의가 종종 있었으나 의견이 엇갈려 실현되지 못한 현실을 감안하여 장단·풍덕·금천의 일부를 분속시키자고 제안하는 내용이다.

의의와 평가

조선 후기의 사회 경제사 및 왕릉에 관한 사항을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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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정선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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