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여규(汝揆). 심온(沈穩)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심약명(沈若溟)이고, 아버지는 영의정 심속(沈涑)이다. 어머니는 변박(卞搏)의 딸이다.
1699년(숙종 25)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지평(持平)·장령(掌令)·필선(弼善)·부교리(副校理)·집의(執義)·대사간·이조참판 겸 실록청당상·경기관찰사와 이조·공조·형조·예조의 판서를 지냈으며, 우참찬·한성부판윤·세자빈객(世子賓客)·판의금·판돈녕부사, 좌참찬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1711년 장령으로 있을 때 대다수의 의견이 한 개인의 주장을 이기지 못하여 당론이 점차 폐해가 되므로 탕평의 도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한때 소론의 탄핵으로 낙향하였다가 1725년(영조 1)에 재등용되었다. 1727년 정미환국(丁未換局)으로 노론이 대거 파직될 때 다시 관직을 삭탈당하였다.
2년 뒤에 서용되어 홍치중(洪致中)과 함께 이인좌(李麟佐) 난의 원인을 찾아 완전히 수습하고, 신임사화 때 죽은 김창집(金昌集)·이건명(李健命)·이이명(李頤命)·조태채(趙泰采)의 노론 4대신의 신원을 건의하였다. 시호는 청헌(淸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