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 목판본. 1250년(고종 37)에 개판(開板)하였으며, 해인사 고려대장경 보유판(補遺版)의 명함(冥函:판각을 보존한 순서의 한 이름.)에 수록되어 있다.
당나라 지엄(智儼)의 ≪화엄경약소 華嚴經略疏≫ 5권 가운데 ≪화엄경≫의 요체를 간추린 십구(十句)에 대한 언급이 있다. 우리 나라 고승으로는 의상(義湘)의 문하생이었던 법융(法融)이 이에 관하여 해설하였으며, 고려 초기 균여가 다시 이에 대하여 해설하였다.
이 책은 천기(天基)가 계룡산 갑사(岬寺)에서 균여의 문하생 담림(曇林)이 지은 방언본(方言本) 가운데 섞여 있음을 발견하였다. 천기는 이 책에서 방언을 삭제하고, 또 신라 법융이 지은 ≪법계도기총수록 法界圖記叢髓錄≫을 참조하여 2권으로 엮었다.
구성은 ① 십구를 나열한 까닭[現列十句之由智致], ② 십구에 대한 이전의 해석[列所釋十句], ③ 자신의 해석[能釋] 등 세 부분으로 나뉜다. ①의 ‘현열십구지유지치’에서 균여는 이 십구가 ≪화엄경≫의 요체라고 보았다.
마치 해인삼매(海印三昧:부처가 이룬 선정의 경지)로서 무명(無明:지혜의 반대)을 제거하는 것처럼, 그 개개의 대의는 무한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였다. 이어서 그 십구를 하나하나 해설하고 있다.
첫째, 초현지법(初現地法)에서는 십지(十地:보살이 수행과정에서 겪게 되는 열 가지 단계)의 근본이 중생심이며, 그것은 또한 정토(淨土)를 향한 기본이라고 보았다. 둘째, 수문취의유오종과(隨文取義有五種過)에서는 일즉다(一卽多)의 교의를 십전유(十錢喩) 등 다양한 논리로 설명하고 있다.
셋째, 교의이대유오중(敎義二大有五重)에서는 망상해인(忘像海印)과 현상해인(現像海印)의 차별을 말하고 부처님의 외향(外向)과 보현보살(普賢菩薩)의 입정(入定), 그리고 그 정에 든 마음의 상태 등을 해설하였다. 넷째, 인과상형현의무진(因果相形現議無盡)에서는 인과의 본래 공한 이치를 상세하게 해설하였다.
다섯째, 회문별속이현의융(廻文別屬以現義融)에서는 티끌 속에 삼세간(三世間)이 포섭된다는 공간적인 인과에 대한 해설을 시도하였다. 여섯째, 기인다라창의변제(寄因陀羅彰義邊除)에서는 인과의 얽힘이 중중무진(重重無盡:끝없이 이어짐.)으로 펼쳐지는 세간과 출세간의 인과를 설명하였다.
일곱째, 총삼삼전현제무궁(摠三三轉現際無窮)에서는 법계(法界)의 무궁무진한 변제(邊際:사물의 끝)를 설명하였다. 그러면서도 그 잡다한 경지가 일승(一乘)에 의하여 관통되고 있음을 논증하고 있다. 여덟째, 무생불법기위승침(無生佛法寄位升沈)에서는 ‘인간’이라는 소우주적 존재의 실상을 밝히고 있다.
아홉째, 미세상용이명극승(微細相容以明極勝)에서는 인연에 따라 존비(尊卑:신분의 높고 낮음.)가 결정되는 중생계의 차별상을 설명하고 궁극적으로는 일승으로 회향되는 길을 밝혔다.
열째, 격월과문성의자재(格越科文成義自在)에서는 육상(六相:세상 만물 모두가 갖고 있는 여섯 가지의 모습)의 도리가 삼라만상에 관통되어 있는 원리라고 보고, 부동(不動)의 자재(自在:걸림이 없이 자유로움.)를 얻는 수행이 권장되고 있다.
②의 ‘열소석십구’에서는 주로 법융의 저서를 인용했지만, 법장(法藏) 등 중국 화엄학의 설도 폭넓게 인용하였다. ③의 ‘능석’에서는 주로 균여의 주관적 견해를 표명했지만, 대체로 의상의 화엄교관을 따르고 있다. ≪화엄경≫의 난해한 세계관과 우주관을 간결하게 설명한 일종의 화엄해설서이다.
또, 육상(六相)·십지(十地) 등 중요한 화엄교의를 적절하게 해설하였으며, 이사무애(理事無碍:현상과 본질이 하나로 융합됨.) 등 화엄의 논리를 응용한 수작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균여가 화엄종의 북악(北岳)에 소속되어 있었으므로 우리 나라 화엄학의 사상적 흐름, 또 중국 화엄학과는 어떤 점이 다른가 하는 것들을 밝힐 수 있는 매우 희귀한 저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