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성당집 ()

유교
문헌
조선 전기의 문신, 엄흔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585년에 간행한 시문집.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엄흔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585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이 책은 제1·2책의 앞부분에 ‘천초문고(淺草文庫)’로 표시되어 있고, 1책의 끝 부분에 호소이(細井謨) 등 일본인이 교정을 보았다고 쓰여 있다. 2책의 뒷부분에 ‘만력을유추정산현개간(萬曆乙酉秋定山縣開刊)’이 있는 점으로 보아, 본래 1585년(선조 18)에 간행하였던 것을 후대에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서문과 발문은 없다.

서지적 사항

2책. 필사본.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

내용

제1책은 부(賦)·시·의(擬)·잠(箴)·명(銘)·송(頌)·변(辨)·제(題)·발(跋) 등이 일정한 순서 없이 섞여 있다. 제2책은 거의 대부분이 시이며, 부록으로 갈문(碣文)·지명(誌銘)·십성당명(十省堂銘)·십성당설(十省堂說) 등이 실려 있다.

부는 벼슬아치가 임금을 섬기는 도리, 자기의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인 글의 중요성 등을 주제로 지은 것이다. 의는 백성들에게 농업에 힘쓸 것을 권하는 내용, 신라의 김유신(金庾信)이 백제를 멸망시킨 것을 하례한 전문(箋文)에 대해 논한 내용 등으로 되어 있다. 송은 계속된 풍년을 기뻐하여 지은 글이다.

변에서는 “무릇 역사라는 것은 시정(時政)과 인간 세상의 일을 기록할 따름인데, 그 기록 가운데 일의 옳고 그름은 가장 밝히기 어려운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그리고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로 문장을 서로 견줄 만하다고 평가되고 있는 한유(韓愈)와 유종원(柳宗元) 두 사람의 사론을 평해, 유종원의 사론에 동조하는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가을이 되어 추수를 해도 먹을 양식이 없는 당시 백성들의 곤란한 생활상을 적은 「민농(憫農)」, 불교 및 고려의 팔관회 행사를 비판한 「팔관회(八關會)」 등이 있다. 제와 발은 다른 사람의 시집에 붙인 글, 어려서부터 같은 동네에 살면서 함께 공부하고 시를 짓고 유람하던 우순(禹珣)·유윤상(柳潤祥) 등의 친구들과 맺은 죽마계(竹馬契)의 계회도(契會圖)에 붙인 글 등이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시는 종사관이 되어 중국 사신을 맞이하면서 원접사(遠接使) 소세양(蘇世讓)의 시에 차운(次韻)해 지은 것과, 친구 임억령(林億齡)·최연(崔演) 등을 대상으로 자신의 심정을 읊은 것이 많다. 특히 임억령에게 지어준 시는 장편이 많다. 이 밖에 부벽루(浮碧樓)·백상루(百祥樓)·대동강(大同江)·봉은사(奉恩寺) 등 명승지나 유명한 사찰을 유람하면서 지은 기행시, 당시의 유명한 문신인 조사수(趙士秀)·이약해(李若海)·심연원(沈連源) 등이 지방관으로 부임하는 것을 송별하면서 지은 시, 관직에 있으면서 병이 든 자신의 심정을 읊은 서정시 등이 있다.

부록으로 실린 갈문은 홍춘경(洪春卿)이, 지명은 이발(李潑)이 지었다. 「십성당명」은 저자의 호가 증자(曾子)의 ‘삼성지의(三省之義)’에서 따온 것임을 밝힌 글이고, 「십성당설」은 중국 사신 설정총(薛廷寵)이 지은 글로 비슷한 내용이다.

집필자
정선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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