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북도 선천 출신. 미국의원단이 한국시찰을 목적으로 1920년 8월 24일 우리 나라를 통과할 때 한국민의 독립심과 독립쟁취의욕을 호소하기 위하여 상해임시정부 광복군총영의 결사대원 이학필(李學弼)·임용일(林龍日)·김응식(金應植)이 국내에 잠입, 미국의원단에게 제출할 진정서 및 선천역과 선천경찰서 폭파계획을 수립하였다.
박치의(朴治毅)·김석창(金錫昌)·백시찬(白時瓚)·백경옥(白敬玉) 등 20여 명과 함께 모의하고, 그 해 9월 1일 새벽 3시 실천에 옮겼다. 당시 선천예수학교 교사로 선천경찰서 폭탄투척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1920년 12월 20일 평양지방법원 신의주지부에서 징역 8년형을 언도받았다.
평양복심법원의 공소를 거쳐 1921년 7월 고등법원에 상고하였으나 기각되어 징역 8년형으로 확정, 복역하였다.
1986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