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보령 출신. 1914년 5월 국권회복을 위하여 동지들과 함께 대한교민 광선회(光鮮會)라는 비밀단체를 조직하고, 유병심(柳秉心)·신규선(申奎善)과 더불어 만주 통화현 합니하(通和縣哈泥河)로 들어가, 서간도에서 활약중인 여준(呂準)·이승규(李昇奎)·이규준(李圭俊)·김창환(金昌煥) 등과 같이 귀국하여 동지를 규합하고 군자금을 조달하기로 결의하였다.
그 해 8월 22일 여준으로부터 격문을 받은 이승규·이철영(李哲榮)으로부터 이승정(李昇正)·이규완(李圭琬)·박진사(朴進士) 등에게 보내는 서신과, 미국에서 발행한 『신한민보( 新韓民報)』 여러 부를 가지고 국내에 잠입, 그 해 9월 12일 서울에 도착하여 윤이병(尹履炳)과 회합하고 활동에 착수하다가 일본 경찰에 잡혔다.
1915년 3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고등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징역 5년 3월로 감형, 복역하였다.
1986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