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언우(彦優). 호는 죽계(竹溪). 아버지는 형조참의 안공진(安公軫)이며, 어머니는 광주안씨(廣州安氏)로 안택(安宅)의 딸이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에게서 수학하였다.
1585년(선조 18)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정자·성균관전적을 역임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해에서 의병을 일으켜 곳곳에서 상당한 전과를 올렸다.
그 뒤 형조정랑·어모장군(禦侮將軍)·장단부사·단양군수 등을 역임하였는데, 선정을 베풀어 왕으로부터 『대학』과 숙마(熟馬)를 하사받았고 군민들이 거사비(去思碑)를 세우기도 하였다. 언제나 충효(忠孝) 2자를 내세워 모든 사물에 결부시키는 실천 위주의 학문을 하였다.
1824년(순조 24)과 1832년에는 지방사림에 의하여 순흥의 용연사(龍淵祠)와 함안의 두릉사(杜陵祠)에 각각 봉향되었다. 저서로는 『죽계집(竹溪集)』 4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