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 ()

목차
고대사
제도
신라 중고기의 약을 담당하던 국왕 근시직.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신라 중고기의 약을 담당하던 국왕 근시직.
내용

유일하게 「진흥왕마운령순수비(眞興王磨雲嶺巡狩碑)」(568)의 수가인명(隨駕人名) 가운데 보인다. 마운령비의 수가인명은 대등(大等)과 하급관리로 구분되는데, 전자는 진골귀족들로서 대등회의의 구성원이었으며, 후자는 대체로 국왕 근시집단으로 보고 있다.

이 가운데 약사인 사탁부(沙喙部)의 매지차(篤支次)는 신라의 17관등 중에 제13관등인 소사(小舍)로 나오는데, 이는 신라 내성 산하관사인 약전(藥典)의 직원구성 곧 ‘사지(舍知) 2명, 사(史) 6명, 종사지(從舍知) 2명’의 구성에서 사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곧 사는 일반적으로 제12관등부터 17관등까지로 임명되었기 때문에 약사의 관등과 그 임명자격에 있어서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진흥왕 때의 약사는 후일 신라의 중앙관제가 정비되면서 내성산하의 약전으로 발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내성 산하에는 이와 관련된 공봉의사(供奉醫師)라는 관사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로 미루어 진흥왕 때에는 약사가 후일의 약전과 공봉의사의 직무를 수행하다가 후일에 두 관사로 분화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견해도 있는데, 그러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참고문헌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上
「신라(新羅) 궁중수공업(宮中手工業)의 성립(成立)과 정비(整備)」(박남수, 『동국사학(東國史學)』26, 1992:『신라수공업사(新羅手工業史)』, 신서원, 1996)
「신라(新羅) 중고(中古)의 국왕근시집단(國王近侍集團)」(이문기, 『역사교육논집(歷史敎育論集)』5, 1983)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