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출신. 젊어서 일본으로 건너가 동보영화사(東寶映畫社)에 입사, 촬영기술을 연수하여 정식 촬영기사자격을 획득한 뒤 귀국, 당시의 낙후된 영화기술면에 크게 기여하였다.
촬영 작품은 「춘풍(春風)」(1935)·「순정해협(純情海峽)」(1937)·「한강」(1938)·「군용열차(軍用列車)」(1938)·「애련송(愛戀頌)」(1939)·「새출발」(1939)·「처녀도(處女圖)」(1939)·「반도의 봄」(1941)·「창공(蒼空)」(1941)·「우러르라 창공」(1943)·「우리들의 전쟁」(1945)·「감격일기(感激日記)」(1945)이며, 8·15광복 후의 작품으로는 「안중근사기(安重根史記)」(1946)·「똘똘이의 모험」(1946)·「그들의 행복」(1947)·「민족의 새벽」(1947)·「갈매기」(1948) 등이 있다.
1940년 일제는 한국영화 통제책으로 조선영화인협회를 창설하였는데, 그는 창설 당시 평의원, 다음해에 이사로 선출되었다. 또한 조선총독부가 한국영화인들의 사상성을 가려내는 기능심사위원회에서 심사위원직을 맡기도 하였다.
광복 후에는 항일·민족독립열사들의 작품에 심혈을 기울이다가 6·25 동란 당시에는 국방부의 뉴스 촬영기사로 활약하였다. 일선에서 부상을 입어 치료 중 북한에 납북당하였다. 국방부로부터 표창장을 여러 번 받은 바 있으며, 오늘날 남겨진 6·25 동란 필름에는 그의 기록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