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언용(彦容). 세조 때의 공신 양성지(梁誠之)의 6대손이며, 곡산군수 양윤정(梁允精)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감찰 양사눌(梁思訥)이고, 아버지는 참봉 양은(梁誾)이다. 어머니는 전주이씨로, 돈용교위(敦勇校尉) 이사안(李思安)의 딸이다.
1600년(선조 33)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으로서 비변랑(備邊郎)을 겸하였고, 이천현감·도총부도사·명천현감·형조좌랑 등을 역임하였으며, 선조 말년에는 평양판관을 지냈다. 광해군 때 대북정권(大北政權)의 실정에 항의하여 사임하였다.
1623년(인조 1) 사헌부의 탄핵에 의하면, 판관으로 재임하였을 때에 권간(權奸)의 부탁으로 주사(舟師)를 동원하여, 미포(米布)를 도둑질하고 5, 6척의 몫을 사용하였다 한다.
1627년 정묘호란 때에 인조를 강화도에 호종한 뒤 군기시부정이 되고, 평안도의 병마우후(兵馬虞候)를 거쳐 1629년 영변부사가 되었다. 글씨에 능하여 특히 예서와 초서를 잘 썼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