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높이 30㎝.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976년 4월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신화리에서 경지 정리를 하던 중 우연히 발견된 불상이다. 발견 장소는 예전부터 신라·고려시대의 기와 조각이 많이 발견되어 왔던 곳이다. 그리고 장대석·석조유구도 찾아볼 수 있어 삼국시대 이래의 폐사지로 추측된다.
이 불상의 모습은 두광과 대좌를 상실한 채 당당한 자세로 서 있다. 두 손 역시 소실되었으나 여원인(與願印)과 시무외인(施無畏印)의 수인을 취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불상의 보존 상태는 매우 좋아 도금이 거의 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다.
머리에는 나발(螺髮)이 표현되어 있고, 얼굴은 대체로 긴 편으로 약간의 미소를 띠고 있다. 목은 매우 길고 굵으며 삼도(三道)의 표현이 생략되었다. 전체적으로 보아 목을 뒤로 젖히고 얼굴을 높이 들어 머리가 우뚝 솟아 있는 느낌을 준다. 불상의 몸체는 어깨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가면서 완만하고 단순한 형태를 유지하여 전체적으로 부풀어 오른 듯한 원통형의 모습을 보여준다.
통견(通肩)의 법의는 가슴과 배를 많이 드러내면서 U자형의 주름을 이루며, 그 가장자리는 굵고 도드라지게 처리되어 있다. 드러난 가슴에는 세 가닥의 선이 음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는 대의(大衣) 속에 대각선으로 걸친 내의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다리 위로 드리워진 몇 개의 U자형 옷 주름은 약간의 부조와 음각선으로 처리되었다. 팔에도 또한 몇 개의 주름이 음각으로 표현되었다. 대의 밑에 보이는 군의(裙衣)의 옷자락은 몇 줄로 겹쳐져서 굵은 곡선을 그리며 늘어진다. 주름진 형태가 특이하며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조형감을 준다.
이 불상의 양식은 약간 딱딱하면서도 묵직하고 단순한 원통형의 몸, 간결한 U자형의 주름 등으로 미루어 보아 중국의 북제(北齊)·북주(北周)에서 수(隋)대에 걸친 불상 조각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출토 지역의 특정상 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추정하는 견해가 유력하다.
이 불상은 황규동 소장의 금동보살입상보다는 훨씬 진보된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강원도 횡성 출토의 금동여래입상(국립중앙박물관 소장)에서 보이는 부드러운 조형성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당당한 자세와 단순화된 조각 수법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