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에 이현보(李賢輔)가 지은 시가. 단가 5장과 장가 9장으로, 『농암집(聾巖集)』에 수록되어 있다.
작자가 그 당시에 얻은 『악장가사』의 「어부가」 12장과 다른 「어부가」 10장이 말이 많고 순서적이지 못하고 혹 중첩이 있음(語多不倫或重疊)이 옮겨 쓰는 과정에서 사실과 다르게 전해진 것으로 판단하고, 전자는 3장을 제거하여 9장으로 장가(長歌)를 지어 읊을 수 있게 하였고, 후자는 축약하여 단가(短歌) 5결(闋 : 곡을 이르는 말)로 짓고 엽(葉)을 하여 창(昌)으로 부를 수 있게 하였다.
전반적으로 『악장가사』의 「어부가」 12장에서 보이는 많은 한글토를 생략하였고, ‘지곡총 지곡총 어ᄉᆞ와 어ᄉᆞ와’를 ‘지곡총 지곡총 어사와’로 축약하였다. 또한 일부 행들을 다른 시어로 바꾸기도 하고, 다른 장들의 시행을 다시 엮기도 하였다.
제1장 제4행의 ‘의선어부(倚船漁父)ㅣ 일견(一肩)이 고(高)로다’를 비롯한, 제3장의 제4행, 제4장의 제3행, 제6장의 제4행, 제7장의 제1·2·4행 등은 새로 바꾼 것들이다. 제2장의 제4행, 제4장의 제4행, 제6장의 제1·2·3행, 제7장의 제3행, 제8장의 제4행, 제9장의 제1·2·3·4행들은 『악장가사』「어부가」의 다른 장의 행들을 각각 옮겨 놓고 있다.
『악장가사』「어부가」는 다른 「어부가」가 가지고 있던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한 개작 동기를 실현하여, 순서화와 중첩의 삭제에서 성공한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러나 윤선도(尹善道)는 ‘소리가 서로 응하지 않고 말뜻이 잘 갖추어지지 못하였으니, 대개 옛 글을 모으는 데에 얽매였던 관계로 옹색해지는 결함을 면하지 못했다’(音響不相應 意不甚備 盖拘集古 故不免於有局促之缺)고 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