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암집 ()

한문학
문헌
조선 후기, 문신 농암 김창협의 시문집.
이칭
이칭
농암전집(農巖全集)
문헌/고서
간행 시기
1709년(숙종 35), 1710년(숙종 36), 1928년
권책수
42권 15책
판본
활자본, 목판본
소장처
규장각, 국립중앙도서관, 장서각, 성균관대학교, 고려대학교 등
내용 요약

『농암집』은 조선 후기 문신 농암 김창협의 시문집이다. 총 42권 15책으로 활자본 및 목판본 등이 다수 전해진다. 이 책에는 사상가와 학자로서의 김창협을 살필 수 있는 자료는 물론이고, 문인으로서의 김창협을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문학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으므로, 조선 후기 철학사 ‧ 문학사를 이해하고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당대의 정치나 정세와 관련한 자료들도 여럿 보이므로 정치사 연구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정의
조선 후기, 문신 농암 김창협의 시문집.
서지사항

42권 15책. 활자본목판본. 부록(附錄) 2권을 포함한 원집(原集) 36권, 속집(續集) 2권, 별집(別集) 4권으로 되어 있다.

편찬 및 간행 경위

이 책의 원집은 여러 차례 증보(增補) 및 간행(刊行)되었다. 초간본(初刊本) 원집 34권은 농암 김창협(農巖 金昌協, 1651~1708)이 사망한 다음 해인 1709년(숙종 35)에 문인 김시좌(金時佐) ‧ 어유봉(魚有鳳) 등이 주도하여 활자(活字)로 간행한 것이고, 중간본(重刊本)은 1710년(숙종 36)에 아우 김창흡(金昌翕) 등이 주도하여 목판으로 간행한 것이고, 삼간본(三刊本)은 1928년에 후손 김영한(金甯漢) ‧ 서상춘(徐相春) 등이 주도하여 활자로 간행한 것이다.

구성과 내용

이 책은 원집 36권(부록 2권 포함), 속집 2권, 별집 4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집의 부록 2권은 1754년(영조 30)에 손자 김원행(金元行)이 편찬(編纂)하였다. 이것을 안동부사 조돈(趙暾)이 원집과 합치고 보충하여 간행했다[補刻]. 이 주14은 36권 18책의 목판본이다. 원집의 김창흡의 서(序)와 김원행의 발(跋)이 있다.

속집 2권에는 원집에 편입되지 않은 「선부군행장(先府君行狀)」 및 「사단칠정설(四端七情說)」 등 김수근(金洙根)이 모으고 정리한 중요한 글들이 실려 있다. 1854년(철종 5)에 금속활자(金屬活字)로 간행하였다. 속집은 원집과 합쳐서 편집한 것으로, 김수근의 속집발(續集跋)이 추가되었다.

별집 4권은 김영한이 서상춘과 힘을 모아 원집과 속집에서 빠진 그 밖의 유문(遺文)을 모은 것이다. 42권 15책으로 원집과 함께 1928년에 간행하였는데, 김영한의 중간발(重刊跋)을 덧붙였다.

원집 권1∼6에는 부(賦) 4수, 시 890여 수, 권7∼9에는 소(疏) · 주19 60여 편, 권10에는 주20 1편, 의(議) 1편, 강의 2편, 권11∼20에는 서(書) 275편, 권21 · 22에는 서(序) 38편, 권23 · 24에는 기(記) 22편, 권25에는 제(題) · 발 16편, 교서(敎書) 2편, 전장(箋狀) 2편, 상량문(上樑文) 2편, 찬(讚) · 명(銘) 4편, 주21 1편, 혼서(昏書) 1편, 권26에는 잡저(雜著) 1편, 권27에는 주22 18편, 권28에는 신도비명 1편, 주23 2편, 묘표(墓表) 6편, 행장(行狀) 2편, 권29 · 30에는 제문(祭文) 12편, 애사(哀詞) 6편, 권31∼34에는 잡지(雜識)가 실려 있다.

속집 권1 · 2에는 행장 · 서(書) · 묘지(墓誌) · 설(說)이 각각 1편씩 실려 있다. 별집 권1에는 시 2수, 서(書) 9편, 그리고 서(序) · 제문 · 주24 · 주25이 각각 1편씩 있다. 권2∼4에는 부록으로 사제문 · 제문 · 주26이 실려 있다. 이 가운데 「논퇴율양선생사단칠정설(論退栗兩先生四端七情說)」에서는 이황(李滉)이이(李珥)가 아직 밝히지 못한 것을 밝혔다. 즉 단(端)과 정(情)이 다 같이 성(性)의 발동인 이상, 이(理)기(氣)가 함께 발한다[共發]고 본 이이의 뜻에 찬성하고 따르지만, 주28은 이(理)를 위주로 하여 말하고[四端主理而言] 주29은 기를 위주로 하여 말한[若七情則主氣而言] 이황의 의견이 옳다고 하였다.

원집 권1에는 금강산(金剛山)을 유람하고 지은 「동정부(東征賦)」, 족질(族姪) 김시걸(金時傑)에게 지어준 「억원부(憶遠賦)」, 바람에 쓰러진 소나무를 읊은 「비송수부(悲松樹賦)」 등의 부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이어서 권6까지는 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1673년(현종 14)부터 1702년(숙종 28)까지의 작품이 창작 시기순으로 편차(編次)되어 있고, 곳곳에 저자인 김창협이 스스로 단 주석[自註]과 『농암집』을 편찬한 사람이 단 주석[編者註]이 부기되어 있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원집 권7에 실려 있는 「관학청백관상복일종고례소(館學請百官喪服一從古禮疏)」 등 일련의 상소문(上疏文)은 서인(西人)남인(南人) 사이에 있었던 예송(禮訟)의 연구 자료로서 매우 값진 것이다.

원집 권8의 「사호조참의소(辭戶曹參議疏)」는 그의 글 짓는 능력을 과시(誇示)한 명문(名文)으로 널리 알려져 온 것이다. 속집 권2에 붙인 「사단칠정설」은 그의 주37 체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논설(論說)이 되고 있다.

원집 권25 잡저의 「동음대(洞陰對)」는 김창협이 영평(永平)에서 은거(隱居)할 때 지은 글로, 김창협의 기개가 잘 나타난다. 여기서 그는 호환(虎患)이 두렵다 하나 인간 세상에는 호환보다 더 무서운 일이 얼마든지 있음을 이야기하며, 비유를 통해 그윽한 주58에 숨어 사는 자기 뜻을 완곡하게 설명하고 있다. 뒷날 갑술환국(甲戌換局)으로 김수항(金壽恒)이 복권되면서, 작자인 김창협에게 예조판서(禮曹判書) · 대제학(大提學) 등의 벼슬이 내려졌으나, 김창협은 끝내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권34 잡지 「외편」에 있는 여러 문장가(文章家)의 시문(詩文)에 대한 비평(批評)은 고문파 문장가이자 탁월한 문학 비평가(文學批評家)로서 김창협의 식견을 잘 보여 주는 좋은 자료이다. 우리나라 문학 비평사에서 그 자료사적 의미는 매우 크다.

명나라 사람과 송나라 사람의 시학(詩學)에서부터 고려시대의 이색(李穡) · 이규보(李奎報), 당대의 한학 주49장유(張維) · 이정귀(李廷龜) · 이식(李植) · 신흠(申欽)에 이르기까지를 비평하였다. 이러한 김창협의 비평은 그의 수준 높은 안목을 보여 주고 있다.

부록 권4에는 후인들이 작성한 「제가장소(諸家章疏)」 · 「제가찬술(諸家撰述)」 · 「제가기술잡록(諸家記述雜錄)」 등이 실려 있다. 「제가장소」는 김창협의 신주(神主)석실서원(石室書院)에 모실 것을 청한 소, 김창협의 신주를 문묘(文廟)에 모실 것을 청한 소, 녹동서원(鹿洞書院)주3 것을 청한 소, 김홍석(金弘錫) 등에게 주4을 당한 송시열(宋時烈) · 김창협을 주5 소 등으로 구성된다. 여기에 수록된 소는 어유봉 · 오희상(吳熙常) · 송상기(宋相琦) 등이 지은 것이다. 「제가찬술」은 어유봉이 지은 「주자대전차의문목후서(朱子大全箚疑問目後序) · 『오자수언(五子粹言)』의 서문 · 『논어상설(論語詳說)』의 발문」, 어유귀(魚有龜)가 지은 「서첩후소발(書帖後小跋)」, 김매순(金邁淳)이 지은 「선화찬(扇畫贊)」 등이며, 「제가기술잡록」은 문인과 사우들의 저술(著述)에서 저자 관련 기사를 뽑아 모아 놓은 것이다.

1980년 경문사에서 『농암전집(農巖全集)』으로 영인(影印) · 간행하였다.

의의 및 평가

김창협의 문집인 『농암집』은 저자가 세상을 떠난 직후에 바로 간행되고 또 이후로 두세 차례 증보하여 간행될 만큼 당대는 물론이고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었다. 이 책에는 사상가와 학자로서의 김창협을 살필 수 있는 자료는 물론이고, 문인으로서의 김창협을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문학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 때문에 『농암집』은 조선 후기 철학사 ‧ 문학사를 이해하고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농암집』에는 당대의 정치나 정세와 관련한 자료들도 여기저기에 보이므로, 『농암집』은 정치사 연구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참고문헌

원전

『농암집(農巖集)』

논문

김창현, 「농암전집 해제」(『농암전집』, 경문사, 1980)
박헌순, 「농암집 해제」(『농암집』, 한국고전번역원, 2000)

인터넷 자료

한국고전종합DB(https://db.itkc.or.kr)
주석
주2

한 번 상실된 권세가 다시 찾아지다. 우리말샘

주3

임금이 사당(祠堂), 서원(書院), 누문(樓門) 따위에 이름을 지어서 새긴 편액을 내리다. 우리말샘

주4

없는 사실을 그럴듯하게 꾸며서 남을 어려운 지경에 빠지게 함. 우리말샘

주5

사리를 따져서 억울함을 밝히다. 우리말샘

주6

본문 끝에 덧붙이는 기록. 우리말샘

주7

본디 있던 서책에 잇대어 수집하여 펴낸 문집이나 시집. 우리말샘

주8

개인 문집의 원집(原集)이 나온 뒤 따로 시문을 모아 냈을 때에 붙이는 이름. 우리말샘

주9

출판된 책이나 글 따위에서 모자란 내용을 더 보태고 기움. 우리말샘

주10

책 따위를 인쇄하여 발행함. 우리말샘

주11

여러 차례 간행된 책에서 맨 처음 간행된 책. 우리말샘

주12

나무에 글이나 그림 따위를 새긴 인쇄용 판(版). 우리말샘

주13

여러 가지 자료를 모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책을 만듦. 우리말샘

주14

목판이 오래되어 문자가 닳아 없어져 판독할 수 없는 부분이 생기거나 분실된 부분이 있어 보수하여 간행한 책. 우리말샘

주15

얽거나 짜 넣음. 우리말샘

주17

생전에 남긴 글. 우리말샘

주19

조선 시대에, 일정한 격식을 갖추지 않고 사실만을 간략히 적어 올리던 상소문. 우리말샘

주20

관아나 벼슬아치가 임금에게 올리는 말. 우리말샘

주21

축하의 뜻을 나타내는 글을 쓰거나 말을 함. 또는 그 글이나 말. 우리말샘

주22

묘지에 기록한 글. 우리말샘

주23

묘갈에 새긴 글. 우리말샘

주24

어떤 사람의 말과 행동을 적어 모은 책. 우리말샘

주25

중국에서, 국가시험의 시사(時事) 문제에 대한 시험의 고안(考案). 우리말샘

주26

위인들이 한 말을 간추려 모은 기록. 우리말샘

주28

사람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네 가지 마음. ≪맹자≫에서 유래한 것으로, 인(仁)에서 우러나오는 측은지심, 의(義)에서 우러나오는 수오지심, 예(禮)에서 우러나오는 사양지심, 지(智)에서 우러나오는 시비지심을 이른다. 우리말샘

주29

사람의 일곱 가지 감정. 기쁨(喜)ㆍ노여움(怒)ㆍ슬픔(哀)ㆍ즐거움(樂)ㆍ사랑(愛)ㆍ미움(惡)ㆍ욕심(欲), 또는 기쁨(喜)ㆍ노여움(怒)ㆍ근심(憂)ㆍ생각(思)ㆍ슬픔(悲)ㆍ놀람(驚)ㆍ두려움(恐)을 이른다. 우리말샘

주30

성과 본이 같은 사람들 가운데 유복친 안에 들지 않는 조카뻘이 되는 사람. 우리말샘

주31

순서에 따라 편집함. 또는 그런 순서. 우리말샘

주32

임금에게 올리던 글. 주로 간관(諫官)이나 삼관(三館)의 관원이 임금에게 정사(政事)를 간하기 위하여 올렸다. 우리말샘

주36

어떤 주제에 관하여 자기의 생각이나 주장을 체계적으로 밝혀 쓴 글. 우리말샘

주37

중국 송나라ㆍ명나라 때에 주돈이(周敦頥), 정호, 정이 등에서 비롯하고 주희가 집대성한 유학의 한 파. 이기설(理氣說)과 심성론(心性論)에 입각하여 격물치지(格物致知)를 중시하는 실천 도덕과 인격과 학문의 성취를 역설하였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말기에 들어와 조선의 통치 이념이 되었고, 길재ㆍ정도전ㆍ권근ㆍ김종직에 이어 이이ㆍ이황에 이르러 조선 성리학으로 체계화되었다. 우리말샘

주38

세상을 피하여 숨어서 삶. 우리말샘

주40

호랑이에게 당하는 화(禍). 우리말샘\

주42

조선 시대에 둔 예조의 으뜸 벼슬. 공양왕 원년(1389)에 예의판서를 고친 것으로 정이품 문관의 벼슬이다. 우리말샘

주44

시가와 산문을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46

문학 작품의 구조와 가치, 작가의 창작 방법과 세계관 따위를 일정한 기준에 따라 판단하고 논평하는 일을 하는 사람. 우리말샘

주48

시의 형식이나 본질, 시 창작의 원리나 방법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 우리말샘

주49

조선 선조 때에, 한학, 특히 고문(古文)에 조예가 깊던 네 문인. 이정구, 신흠, 장유, 이식을 이른다. 우리말샘

주53

인쇄물의 원본을 사진으로 복사하여 인쇄하는 일. 우리말샘

주56

정치적 사실과 정치권력의 발전 과정을 연구하는 학문. 우리말샘

주57

책의 끝에 본문 내용의 대강(大綱)이나 간행 경위에 관한 사항을 간략하게 적은 글. 우리말샘

주58

경기도 영평 응암(鷹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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