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함종(咸從). 자는 순서(舜瑞), 호는 기원(杞園). 어세공(魚世恭)의 9대 손이고, 수운판관(水運判官) 어한명(魚漢明)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경기도관찰사 어진익(魚震翼)이고, 아버지는 한성부우윤 어사형(魚史衡)이며, 어머니는 유거(柳椐)의 딸이다. 경종의 장인 어유구(魚有龜)의 형이다. 김창협(金昌協)의 문인이다.
1699년(숙종 25) 사마시에 합격해 진사가 되었는데, 이 때 과거 시험의 부정을 보고 대과의 응시를 단념하였다. 뒤에 내시교관(內侍敎官)이 되었으나 사퇴했다가 건원릉참봉(健元陵參奉)이 되었다.
1706년 우의정 김창집(金昌集)의 천거를 받고 천안군수에 임명되었고, 1718년 장령(掌令)을 거쳐 이듬해 집의(執義)에 올랐다. 경종이 즉위한 뒤 양주목사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고, 1722년(경종 2) 신임사화로 스승 김창협이 화를 당하자 유생들과 함께 스승을 변호하다가 파직되었다.
영조가 즉위하자 관직에 다시 복귀해 집의·사복시정(司僕寺正)을 역임하고, 1734년(영조 10) 호조참의, 이듬해 승지가 되었다. 1738년 세자시강원찬선(世子侍講院贊善)이 된 뒤 영조로부터 지극한 대우를 받으면서 세자의 스승으로도 불렸으나, 1742년 자신이 맡고 있는 직분을 감당할 수 없다고 사퇴하였다.
당대의 학자로 명망이 높았으며 학문적으로는 이른바 낙론(洛論)으로서 권상하(權尙夏)의 문인 이간(李柬)의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을 지지하였다. 문하에는 이천보(李天輔)·홍상한(洪象漢)·윤득관(尹得觀) 등의 학자를 배출하였다. 저서로는 『기원집(杞園集)』·『경설어록(經說語錄)』, 편서로는 『오자수언(五子粹言)』·『논어상설(論語詳說)』·『주자어류요략(朱子語類要略閨誦)』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