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기오(箕五). 호는 동강(東江). 아버지는 군수(郡守) 김홍진(金鴻鎭), 어머니는 대구서씨(大丘徐氏) 서민순(徐敏淳)의 딸이다. 9세 때에 경술(庚戌)의 국변(國變)으로 약을 먹고 순국(殉國)한 김석진(金奭鎭)에게 입양되었다.
어려서부터 영특하여 1894년에 17세의 나이로 사마시에 합격하고, 1898년 희릉참봉(禧陵叅奉)으로 출사하여 영릉참봉(寧陵參奉)·영릉참봉(英陵參奉)을 거쳐서 시강원시종관(侍講院侍從官)이 되었다가, 용인군수(龍仁郡守)·양근군수(楊根郡守)를 거쳐서 비서원승(秘書院丞)에 이르렀으나, 을사조약(乙巳條約)이 일본과 채결되자 세상에 뜻이 없어져 조정에 나아가지 아니하였다.
경술국치(庚戌國恥)로 양부(養父) 김석진(金奭鎭)이 음독자진(飮毒自盡)하고 일본(日本)이 강권한 작위와 돈을 받는 것은 불충불효(不忠不孝)라 하여 끝내 받지 아니하였다. 문장가로써 세상에 알려져서 일생을 마쳤다. 저서로는 『급우재집(及愚齋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