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권 3책. 한문본. 단군조선부터 고려 멸망까지의 통사를 서술한 책이다.
김택영은 학부 편집국에서 1895년과 1899년에 역사교과서 편찬을 주관한 바 있다.
그 경험 위에서 1902년에 『동사집략(東史輯略)』을 저술하였는데 이 책은 그의 증보판이다. 당시 교과서 외에 볼 만한 역사책이 없었는데 교과서보다 체계적이고 상세한 내용으로 편집된 『동사집략』과 『역사집략』이 저술되어 한말 지식인에게 널리 읽혔다.
제1권은 단군조선기(檀君朝鮮記)인데 단군의 기록은 황당하여 믿을 수 없다고 하였다. 때문에 단군은 왕(王)이나 제(帝)가 아닌 주(主)의 호칭으로 표기하였고 그의 죽음도 붕(崩)이나 훙(薨)이 아닌 몰(沒)로 썼다.
그에 비하면 제2권은 이름부터 ‘조선기(朝鮮紀)’라 하여 격을 높이고 우리 나라를 기자조선부터 개국된 것으로 보면서 기자(箕子)를 태조문성왕(太祖文聖王)이라 하였다.
아울러 역대 임금과 그 치적을 비교적 상술하였다. 삼한정통설(三韓正統說)에 의해 마한기(馬韓紀)를 함께 쓰고, 부기(附記)로서 위만조선·진한·변한·4군 2부의 역사와 신라·고구려·백제의 발생에 대하여 썼다.
제3권은 3국에 대한 내용인데 후마한(後馬韓, 마한부흥운동)·진한·대가야·가락국·3군(郡)을 부기하였다. 제4권은 3국을 본기로 쓰고 가락과 대가야를 부기하였다. 제5권은 신라기(新羅紀, 통일신라)인데 발해를 부기하였다.
이와 같이 본기[이 책에서는 본기라는 명시는 없다]와 부기를 구분할 정도로 중세적 정통론의 의식이 크게 반영되어 있다. 또 일본의 진쿠황후(神功皇后)의 신라정벌설과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 등 『일본서기(日本書紀)』의 내용을 도입하였다.
제6권부터 11권까지는 고려기(高麗紀)인데, 한말의 역사책 중에서 고려시대를 가장 상세하게 서술한 것이 주목된다. 그것은 저자 자신이 고려의 후예라고 자처하였던 의식이 반영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보면 편년체 서술이고, 아직 도덕적 평론이 많은 경사일체(經史一體)의 성격이 있고, 고조선을 중국의 분가(分家)처럼 서술한 모화사관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근대적 역사서술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왕실 중심의 서술을 극복하여 사회·문화면의 서술에 힘을 쏟은 점이나 안설(按說)을 장황하게 전개하여 사실의 고증과 그 때까지의 학설을 비교, 분석한 점 등에서 근대사학에 접근하려는 흔적이 역력하다.
그런데 이 책은 1902년의 『동사집략』에 이어 임나일본부설 등의 일본측의 주장을 거듭하여 맹종하여 당시 계몽주의의 사상계를 크게 손상시켰다는 점에서 비판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당시 일제의 문화 침략의 선봉자였던 학부 참여관 누사하라(幣原坦)의 서문이 있어 계몽주의의 한계가 서두에서부터 나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