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9년(고종 26) 조여변(趙汝抃)의 아들 조윤우(趙胤遇)가 후손 조흠화(趙欽華)·조신근(趙信根)·조희상(趙熙商) 등의 도움을 얻어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송병선(宋秉璿)의 서문과 권말에 조윤우의 발문이 있다.
5권 2책. 신연활자본. 국립중앙도서관과 규장각 도서에 있다.
권1에 시 29수, 서(書) 15편, 권2에 서(書) 55편, 잡저 2편, 권3에 잡저 3편, 서(序) 11편, 기(記) 2편, 권4에 발(跋) 1편, 제문 14편, 묘갈 1편, 권5에 행장 1편, 부록으로 저자의 행장, 묘표, 염수와기(念修窩記), 묘지명, 유장(儒狀)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계룡산·화양동·금강산 등 명승지를 유람하면서 지은 기행시가 많다. 서(書)는 스승 송달수(宋達洙)를 비롯해 조두순(趙斗淳)·송능규(宋能圭) 등에게 보낸 것이다. 대부분 안부를 묻는 간단한 내용으로 되어 있으며, 간혹 학문이나 예(禮)를 논의한 것이 섞여 있다.
잡저 가운데 「척사설시동지(斥邪說示同志)」는 1863년(철종 14)에 서양 선박이 군포(軍浦)에 들어와 포교를 하자 지은 글이다. 조선시대 학문의 연원은 정몽주(鄭夢周)·조광조(趙光祖)·이황(李滉)·이이(李珥)·김장생(金長生)·송시열(宋時烈) 등으로 이어졌으며, 특히 관북지방에서는 최신(崔愼)에 의해 그 맥이 이어졌다고 지적하면서, 천주교의 의식·교리 및 그 폐단 등을 비판하였다.
「천지인일리도(天地人一理圖)」는 주돈이(周敦頤)의 『태극도설』을 알기 쉽게 풀이한 글이다. 「관북문견(關北聞見)」은 관북 지방의 열녀·효자·선비 등에 얽힌 일화를 모은 글이다. 이 밖에 계룡산을 유람하고 지은 기행문이 있다.
서(序)는 주로 계(契)·향안(鄕安) 등에 붙인 글이다. 특히 면향안(面鄕案)에 붙인 서문은 군 단위의 향안에 이름을 몰래 올리는 잠록(潛錄)의 폐단을 시정하기 위해 향의(鄕議)를 거쳐 각 면에 향안을 두게 된 내력을 밝히고 있다.
조선 후기 지식인의 학문 경향 및 사회 변화에 대한 인식, 계·향안 등의 문제를 중심으로 한 사회사 등의 연구에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