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지방주민에 의하여 석기류 11점이 발굴되어 국립박물관에 보고되었다. 파괴된 남방식 고인돌이며, 1960년 김원룡(金元龍)이 현지를 조사하고 복원보고문을 발표하였다.
유적은 매곡면의 금강 상류 동쪽 기슭 평지에 있으며 경부선 황간역에서 남쪽 6㎞의 거리에 있다. 원래 3.0×2.5m에 두께 2m 정도의 화강암 거석이 장축을 남북으로 하고 밭 위에 있었고, 그 밑에는 지름 30∼40㎝ 정도의 돌 4,5개가 받쳐 있었는데 경작에 방해가 되므로 밭임자가 깨뜨려서 제거하였다.
그리고 경작을 위해 삽으로 땅을 파니까 지하 30㎝ 깊이에서 판석이 대략 원형으로 깔려 있었고 그 밑에서 석촉 8점이, 다시 그 밑에서 판석깔이, 그것을 들어내니까 석검 한점, 그 밑에서 또 판석깔이, 그 밑에서 석검 한점, 단인석부 한점, 그리고 또 판석깔이가 있었다 한다.
결국 판석깔이가 4층으로 이루어지고 그 사이사이에서 석기류가 나왔다는 것이 되는데, 전라남도 고흥군 두원면 운대리의 고인돌군에서도 “지하에 판석을 평면으로 겹쳐 쌓았을 뿐 아무런 관곽도 유물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고인돌이 4기 보고되어 있어, 이것도 그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되나 판석으로 짠 돌덧널[石槨]이 무너진 것일 가능성도 전적으로 배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여기에서 나온 석기는 일단병 석검 두개, 이른바 대팻날이라고 불리는 납작한 단인석부 한개, 유엽형 석촉 8개 등인데 석촉 중에는 삼국시대의 철촉의 조형이라고 할 수 있는 뱀머리형도 있다. 청동기시대 후기의 남방식 고인돌의 한 예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