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보도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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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
의례·행사
고려시대에 사직의 안태를 도모하고자 행하던 도교의례.
이칭
이칭
영보초(靈寶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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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시대에 사직의 안태를 도모하고자 행하던 도교의례.
내용

『영보경(靈寶經)』의 독송을 주로하는 의식으로 1265년(원종 6) 정월에 행해진 것이 가장 오랜 기록이다.

1110년(예종 5) 송나라에서 2명의 도사가 오고 복원궁(福源宮)이 건립됨에 따라 고려 도교의례가 중국의 성립도교(成立道敎)에 준하여 체계화되었는데, 이 도량도 그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도량이라는 이름 때문에 흔히 불교의례라고 잘못 여겨져왔다. 도교의 도량에는 이 밖에도 성변기양십일요소재도량(星變祈禳十一曜消災道場)·북제신병호국도량(北帝神兵護國道場) 등이 있었다.

영보도량은 복원궁·신격전(神格殿) 등의 도관이나 내전(內殿)·편전(便殿) 등에서 설행(設行)되었으며, 10월(孟冬)의 항례적 성격(恒例的性格)이 짙다.

설행목적은 한마디로 왕실의 기복(祈福)이지만, 구체적으로는 천재지변이나 병혁(兵革) 등을 기양(祈禳)함으로써 사직의 안태(安泰)를 도모하는 데 있었다.

오늘날 남아 있는 영보도량 청사(靑詞)에 의하면 도사들을 모아 행하는 이 집회는 독자적인 형태를 지니고 제의적 성격만 있는 재초(齋醮)와 겸하여 설행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 영보초(靈寶醮)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행해짐으로써 성격이 바뀌었다가 폐지되었다.

참고문헌

『조선도교사(朝鮮道敎史)』(이능화, 이종은역, 보성문화사, 1977)
「고려도교사상(高麗道敎思想)의 연구」(양은용, 『원광대학교논문집』19,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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