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5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건물. 1981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1368년(공민왕 17) 부사 이용(李容)이 명원루(明遠樓)를 창건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그 후 1637년(인조 15) 군수 한덕급(韓德及)이 누각 15칸, 협각 3칸을 중창하여 이름을 ‘조양각’이라 고쳤다 한다.
1742년(영조 18) 군수 윤봉오(尹鳳五)가 3중창하였으나 1920년대 일본인들에 의해 협각을 비롯한 내ㆍ외문이 철거되고 조양각 1동만 남게 되었다.
조양각은 좌협칸에는 전면에 전퇴 1칸이 형성되고, 그 뒤쪽으로는 2고주를 좌우로 세워 2통칸의 온돌방을 꾸몄는데, 현재 사면의 벽은 모두 개방되어 있다. 온돌방 이외는 모두 우물마루를 깔고 개방시켰다.
대청의 가구는 5량가인데, 대량 위에 주두(柱頭)를 놓고 보아지를 두공처럼 짜아 중도리 및 받침 장여를 받는 이중의 첨차를 결구시켰고, 종량 위에는 판대공을 두어 종도리를 받쳤다.
측면에서 우미량(牛尾樑)처럼 충량이 휘어올라와 중도리 왕지 부분이 충량 등에 얹히도록 하였다. 평주상의 공포는 2익공형이며, 창방과 짜인 주두 아래의 헛첨차와 대량 받침 보아지가 내부에서는 한몸의 보아지로 처리되었다.
각 주칸 사이에는 화반(花盤: 주심도리 밑 장여를 받는 초새김한 받침)을 두었는데, 전후 퇴칸에만 1매씩이고 나머지는 각각 2매씩 두었다. 이 건물은 금호강의 풍경과 잘 어우러진 위치와 더불어 주상의 공포형식과 상부 가구수법 등이 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