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집의 현 소유자 권영기(權榮基)의 11대조인 권문해(權文海)는 『대동운부군옥』의 찬자(撰者)로서 이름이 알려져 있다.
이 건물은 그의 할아버지 때 지은 것으로 임진왜란 전의 건축이라 한다. 대문간채에 계단을 설치하고 있어 건물 전체가 매우 높고 웅장하게 보이며 고졸한 맛도 풍긴다. 사당은 안채 오른쪽 후방에 배치되어 있다.
안채에서 정면 3칸 중 왼쪽 칸이 안방이고 나머지 2칸은 우물마루를 깐 대청으로 전면은 개방되었다. 안방의 왼쪽건물의 모서리에 도장방을 단칸으로 설치하여 안방과 부엌에서 출입하게 하였다.
도장방 앞에 안방과 접하여 마당 쪽으로 부엌 3칸을 길게 뽑았다. 안대청의 오른쪽에는 근년에 반 칸을 앞으로 확장한 한 칸 반 크기의 건넌방이 있고, 좁아진 앞마루를 건너, 안사랑 후원으로 통하는 문간과 고방이 마당 쪽으로 배치되어 있다.
앞채의 중문간은 안마당의 왼쪽에 치우쳐 있고 오른쪽으로 아랫방 2칸과 고방 단칸이 자리 잡았으며, 연접하여 오른쪽 ㄱ자형의 안사랑채가 놓여 사랑채와 연결되었다. 안사랑 부분은 안사랑방과 두 면이 개방된 마루와 사랑채 뒤쪽의 동마루에 연결되는 쪽마루로 된 통로 등으로 이루어졌다.
예천권씨 초간종택 별당은 이미 1967년에 보물로 지정되었다. 그 평면구성은 오른쪽 3칸을 대청으로 하고 왼쪽 1칸은 온돌방을 드렸는데 그 내부는 다시 두 방으로 구분되어 있다.
대청 전면은 모두 문짝 없이 그대로 개방하고 측면과 뒷면은 인방(引枋) 아래위를 판벽으로 하였는데, 그 중앙에 두짝 열개의 판문이 있다. 그 중 뒷면 중앙칸에는 좌우의 것보다 큰 굽널 있는 두짝 살문을 내고 그밖에는 쪽마루를 깔았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단순한 평면구성으로 되어 있다. 안채는 자연석 초석 위에 방주(方柱)를 세웠고 대청 상부 가구(架構)는 오량가로 사다리꼴 판대공을 세워 마루도리를 받고 있다.
민도리에 홑처마집으로 들보 밑의 보아지는 고졸한 형상으로 초각(草刻)되어 있다. 안대청 뒷벽에는 각각 두짝 열개의 널문이 달려 있는데 문틀의 중앙에는 수직으로 중간설주가 서 있다.
이러한 유구(遺構)는 다락에 낸 살창문에서도 볼 수 있다. 사당 어간(御間)의 문틀 중앙에도 수직으로 중간설주가 서 있는데, 그 단면이 T자형으로 문받이를 겸하고 있으며, 위쪽으로 밀어 올려서 떼어낼 수도 있게 되어 있다.
출입문에 중간설주가 서 있는 예는 도산서원의 장판각에서도 볼 수 있으나 착탈식으로 된 것으로는 발견된 유일한 예이다. 이 집은 조선 전기의 우수한 주택으로 보존상태가 양호하며, 특히 중간설주의 유구 등은 조선 전기와 중기 · 후기 주택의 구조와 양식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