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명중(明仲), 호는 장계(藏溪). 아버지는 도승지에 증직된 오희도(吳希道)이며 어머니는 순천김씨(順天金氏)로 도사 김복흥(金復興)의 딸이다. 정홍명(鄭弘溟)의 문인이다.
1639년(인조 17) 사마양과(司馬兩科)에 합격하고, 1640년 고두강(高斗綱)·정한(鄭漢)을 찾아 산사로 가서 함께 『주역』을 강론하였다. 1650년(효종 1) 태학(太學)에 들어가 이듬 해 정시(庭試)에 응하였으나 자급(資級)이 없다는 이유로 낙방하자 고향으로 돌아가 학문에 전력하였다.
학문에 조예가 깊었을 뿐만 아니라 기예(技藝)에도 능하였는데, 거문고는 사악한 생각을 금한다 하여 특히 좋아하였다. 1653년 어머니가 죽자 장사와 제사의 모든 절차를 주자의 『가례』에 따라 행하였고, 1655년 병에 걸려 37세에 요절하였다. 저서로는 『장계유고(藏溪遺稿)』 1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