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재집 ()

오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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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문헌
조선 후기의 문신, 양만용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17년에 간행한 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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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양만용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17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1917년 양만용의 후손 양선묵(梁璿默)이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송병화(宋炳華)의 서문이 있고, 발문은 없다.

서지적 사항

10권 2책. 목활자본. 국립중앙도서관과 고려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내용

권1·2에 부(賦) 1편, 시 104수, 소(疏) 14편, 계(啓) 4편, 권3·4에 진어잠(進御箴) 2편, 응지문(應旨文) 3편, 기우문 7편, 축문 9편, 제문 3편, 서(書) 1편, 잡저 1편, 명(銘) 1편, 권5·6에 일기, 별집의 권1·2에 부 6편, 시 3수, 표(表) 1편, 논(論) 2편, 책(策) 4편, 명 3편, 송(頌) 2편, 서(書) 1편, 부록으로 제공시서(諸公詩書)·만장·제문·세계·신도비명·묘지명·행장·행록략·행장후기·존주록(尊周錄) 등이 수록되어 있다.

소의 「논수사소(論修史疏)」는 사필의 중요성을 강조한 글로, 송나라 범조우(范祖禹) 등의 말을 인용해 문자를 검열해서는 안 된다고 주청하였다. 「대기유청종사양현소(代畿儒請從祀兩賢疏)」는 경기유생을 대신해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을 문묘에 종사할 것을 주청한 글이다. 그들의 도덕과 문장을 지칭하면서 국가에 이바지한 공적과 후학을 계도한 업적을 높이 칭찬하여 문묘에 종사하는 것이 타당함을 주장한 것이다.

「논무폐계(論武弊啓)」는 허명무실한 군대의 폐단을 지적하면서 고도의 훈련을 시켜서 국난에 대비해야 된다고 주장한 글이다. 「일기초략(日記抄略)」은 설서로 있을 때 대내에서 일어난 일을 보고 들은 대로 빠짐없이 기록해 후일의 참고에 대비한 것이다.

「기주초략(記註抄略)」은 사관으로 『정원일기(政院日記)』를 정리하면서 중요한 사건이나 당시에 있었던 일들을 별도로 기재해 후일 정사(正史)에 잘못됨을 막고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모두 당시의 정치사 연구에 도움이 되는 자료들이다.

책 가운데 「경전전책(經典殿策)」은 경연에서 경전에 대해 소신을 밝힌 글이다. 「법제책(法制策)」은 법률은 권선징악의 효과를 최대한으로 살려야 되며, 임금보다는 국가의 번영을 고려해서 만들어야 된다고 주장한 글이다. 그밖에 상제에 대해 의견을 진술한 「상제책(喪制策)」, 임금과 신하의 만남이 어렵다고 말한 「군신상우책(君臣相遇策)」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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