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김석진의 아들 김영한(金寗漢)이 편집·간행하였다. 서문은 없고, 권말에 김영한의 발문이 있다.
4권 1책. 신활자본. 국립중앙도서관과 고려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두에 총목이 있고 각 권별로 목록이 있다. 권1에 시 18수, 소차(疏箚) 36편, 권2에 계사(啓辭) 13편, 헌의(獻議) 1편, 경연강의(經筵講義) 1편, 전문(箋文) 3편, 치사(致詞) 1편, 서독(書牘) 3편, 서(序) 2편, 기(記) 1편, 제문 1편, 묘지 2편, 묘표 1편, 권3·4에 부록으로 순원숙황후어찰(純元肅皇后御札)·교지(敎旨)·교서·읍혈록(泣血錄)·유사·행장·묘지·묘갈명·고문(告文)·제문·애사·애장(哀章)·세계·연보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근정전진찬일갱진예제(勤政殿進饌日賡進睿製)」·「철인왕후만장(哲仁王后輓章)」·「신정왕후만장(神貞王后輓章)」·「순명비만장(純明妃輓章)」 등 왕실에 대한 하시(賀詩) 또는 만장이 거의 전부이다.
소차 가운데 「옥당논사연명차(玉堂論事聯名箚)」는 1865년(고종 2) 옥당에 있을 때 죄인 상로(尙魯)·김진형(金鎭衡)·심이택(沈履澤) 등의 처벌을 연명으로 주청한 차자이다. 「옥당청복선연명차(玉堂請復膳聯名箚)」는 1890년 대왕대비가 죽어 임금이 예제(禮制)에 따라 감선(減膳)하고 있을 때 왕의 건강을 위해 복선을 주청한 차자이다.
「옥당청침수예산릉지명연명차(玉堂請寢隨詣山陵之命聯名箚)」는 왕이 영여(靈轝)를 따라 산릉에 가겠다는 것을 만류하는 내용의 차자이다. 「겸진소회재소(兼陳所懷再疏)」는 1896년 궁내부특진관을 사직하는 두 번째의 사직소로, 임금의 일심을 바르게 하여 천리를 따르고 인욕을 제거하기를 아울러 청하는 내용이다.
계사 가운데 「빈청청복선연명계(賓廳請復膳聯名啓)」 역시 1890년 10차에 걸쳐 복선을 주청한 내용이다. 「경연강의」는 1864년에서 1866년 사이에 저자가 검토관 및 시독관으로 경연에 참석해 강의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읍혈록」은 1910년 9월 4일부터 1911년 3월 5일까지의 기사로, 저자가 일본 사람이 내린 관작과 금표를 거절하고 음독자결한 일의 전말을 아들인 김영한이 기록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