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다포식의 맞배지붕건물. 1995년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용연사는 914년(신라 신덕왕 3년) 보양국사(寶壤國師)가 창건한 후 임진왜란으로 소실되는 등 수난을 당하다가 1728년(영조 4) 극락전을 비롯한 여러 건물들이 중건되었다.
근년에 발견된 상량문에 약 270년 전에 보궁을 건립한 것으로 나타나 1700년대 초엽 사찰의 중건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극락전은 전면 기단은 둔중한 화강석 다듬돌을 세벌대로 높게 쌓고, 그 위에 원좌를 둔 자연석 주초를 놓아 흘림과 안쏠림을 둔 두리기둥을 세워 지었다.
전면은 창호로 개방하였는데 모두 2단의 궁판을 둔 교살문양의 4분합문을 달았다. 측면은 전면 협간에만 좁은 외여닫이문을 달아 출입하게 하고, 배면에는 어간에 띠살 쌍여닫이문을 냈다. 공포(栱包)는 외삼출목, 내사출목이다.
살미첨차는 길이가 짧고 끝부분이 수직으로 절단된 앙서형[仰舌形]으로 윗몸에 연꽃봉오리를 초각하였고, 상부에 운공(雲工)과 용두를 장식하였다. 배면은 용두 대신 운공과 봉두를 사용하였다.
불전 내부는 우물마루 바닥을 깔고 내진고주를 세워 고주 사이를 후불벽으로 처리하여 불단을 꾸몄다. 극락전임에도 아미타불이 아닌 석가모니불과 문수보살 · 보현보살을 봉안하고 후불탱화 역시 미타탱(彌陀幀)이 아닌 영산탱(靈山幀)이다.
천장 구성은 층단(層段)반자로 각 층단 벽에는 불벽을 치고 벽화를 그렸으며, 상단 천장은 소란반자로 꾸미고 금단청[錦丹靑:부재 양 끝에 머리초를 그리고 중간에 무늬를 넣은 단청]을 올려 매우 화려하다.
불단 상부는 보개를 얹고 운각과 용을 장식하여 장엄하였다. 배면기둥과 대들보에 시주자의 이름을 오목새김하였고, 외측면의 박공 안쪽에 별기화(別技畫)를 그린 반자로 장식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 전각은 18세기 다포양식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내부 단청의 뛰어난 기법과 고아한 벽화의 수법 역시 수작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