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인 이유로 유배중인 아들 강석규에게 1668년(현종 9)에 지어 보낸 것을, 현손 강규환(姜奎煥)이 1716년(숙종 42) 도설(圖說)을 붙이고 한원진(韓元震)의 서문을 얻어 1724년(경종 4)에 간행하였다.
그 뒤 6세손 강창회(姜昌會) 등이 홍석주(洪奭周)의 후서(後序)를 얻어 1831년(순조 31)에 간행하였다. 앞머리에 한원진의 서문, 규환이 붙인 「우곡선생훈자격언도설(愚谷先生訓子格言圖說)」과 목록이 있다.
도설은 이 책의 논지를 도식으로 재구성하고 그에 대한 설명을 붙인 것이다. 본문은 통설(通說)을 앞에 두고 입지(立志)에서 대향당(待鄕黨)에 이르는 21개조항을 설명하였으며, 끝에 총론을 붙여 논지를 총괄하였다.
그 뒤 저자가 규환에게 이 책을 보내던 때의 편지를 실었으며, 끝에는 홍석주의 후서가 있다. 본문의 체재는 이이(李珥)의 『성학집요(聖學輯要)』를 본받아 각 주제에 해당하는 옛 인물들의 말을 채집하고, 사이사이에 자신의 의견을 덧붙이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대학』의 수신제가가 전체의 강령인데, 수신에 대해서는 거경(居敬)·궁리(窮理)·역행(力行)의 세 요점과 다시 그것들에 따른 조목 11개조항이 있어 제가의 근본을 이루며, 제가의 요점으로는 정윤리(正倫理)·독은의(篤恩義)와 그에 따른 9개조목이 있어 치국의 근본을 이룬다고 하였다.
동시에 수신과 제가는 분리되는 두 길이 아니므로 그것을 지(知)·인(仁)·용(勇)의 세 달덕(達德)으로 체득하고 함양할 때 치국과 평천하가 어려움 없이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규장각 도서·국립중앙도서관·장서각 도서 등에 1831년에 간행된 1책의 활자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