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성석(聖錫), 호는 경재(景齋) 또는 경도(景陶). 우진권(禹鎭權)의 아들이다. 달성(達城)에서 태어났으며, 서울에 올라가 명류(名流)들과 교유하면서 학문을 닦았다.
1865년(고종 2) 대원군이 만동묘(萬東廟) 훼철을 명령하자 성균관 유생들과 더불어 반대상소를 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1878년 선공감역(繕工監役)에 임명되었으며, 곧 감조관(監造官)으로 옮겨졌다. 문경에 은거하면서 이황(李滉)을 본받아 사군정(思君亭)을 짓고 ‘경도’라 호를 붙였다.
그 뒤 상의원주부·북부령(北部令)·사직령(社稷令), 현풍·영덕·예안의 현감과 임천·단양의 군수를 역임하여 치적을 남겼다. 1892년 돈녕부도정에 임명되었으나 고향으로 돌아가 경전을 공부하는 한편, 후학의 교육에 힘써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만년에 문하생이 많아지자 사림들이 강사(講舍)를 세워 ‘인산정사(仁山精舍)’라 하였다. 성리학의 기본문제들을 탐구하여 많은 저술을 남겼으며, 후학들의 학문방법에 대하여서도 많은 가르침을 남겼다. 문집으로 『경재집(景齊集)』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