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서경유수관(西京留守官) 평양부(平壤府)에서 북계(北界)의 중부 전선으로 향한 역로망이다.
『고려사』 권82 병지2 참역(站驛)에, “운중도(雲中道)는 43개의 역을 관할한다. 장수(長壽)[서경(西京, 평양특별시)], 통덕(通德)·선전(善田)·김천(金川)[자주(慈州, 평안남도 평성시)], 장리(長梨)·장환(長歡)·풍세(豐歲)[연주(連州, 평안남도 개천시)], 소민(蘇民)·신정(新定)·통로(通路)[철주(鐵州, 평안북도 철산군)], 원림(圓林)[연주(延州, 평안북도 영변군)], 영안(永安)[청새(靑塞, 자강도 희천시)], 석성(石城)·앵곡(櫻谷)·평녕(平寧)[평로(平蘆, 평안남도 숙천군)], 관동(寬洞)[성주(成州, 평안남도 성천군)], 밀전(密田)·함덕(咸德)[순주(順州, 평안남도 순천시)], 안덕(安德)·안동(安洞)·덕림(德林)[박주(博州, 평안북도 박천군)], 견우(牽牛)·치담(淄潭)·관천(寬川)[영원(寧遠, 평안남도 영원군)], 임동(臨洞)[수덕(樹德, 평안남도 양덕군)], 청간(淸澗)[양암(陽嵓, 평안남도 양덕군)], 신풍(新豐)[무주(撫州, 평안북도 구장군)], 운곡(雲谷)·동산(東山)·태래(泰來)[맹주(孟州, 평안남도 맹산군)], 관화(寬化)·석우(石牛)[위주(渭州, 평안북도 영변군)], 위계(葦溪)·안태(安泰)[태주(泰州, 평안북도 태천군)], 문평(問平)·사주(沙川)·풍천(豐川)[연주(延州)], 옥아(玉兒)·운반(雲畔)[운주(雲州, 평안북도 운산군)], 옥관(玉關)·자전(榟田)[창주(昌州, 평안북도 창성군)], 장림(長林)[성주(成州, 평안남도 성천군)], 흥덕(興德)[은주(殷州, 평안남도 순천군)]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운중도는 북방 군사지대인 북계의 주요 주진(州鎭) 중 하나인 운주의 성종대 별호(別號)인 운중(雲中)을 사용한 역도 명칭으로, 서경에서 자주와 연주(連州)를 경유하여 북계의 중부 내륙 전선으로 향하는 역도망이다. 운중도는 출발지점인 서경에서 장수역 1개소로 시작하지만, 북쪽으로 향하면서 자주에 3개 역, 박주에 3개 역, 연주(連州)에 3개 역, 연주(延州)에 4개 역이 소재하여 국경지대로 갈수록 역의 조밀도가 높아지며 역로망이 발달하는 양상을 보인다. 북계의 서북쪽 압록강 하류지역으로 향하는 또 다른 역도인 흥화도(興化道)와는 대령강(大寧江) 유역에서 결합하였다. 또한 운중도는 낭림산맥 너머의 동계(東界) 영역으로 향하는 맹주(孟州)·영원진(寧遠鎭) 등을 비롯한 주요 군진(軍鎭)에도 다수의 역참시설이 분포하는 특징을 보인다. 이러한 운중도는 총 43개의 역이 소속되어 있어 고려시대 22역도 중에서 가장 많은 역을 관할하는 역도이다.
고려시대 운중도는 북계의 중부 내륙 전선으로 향하는 군사도로의 성격을 지닌 역로망이다. 북계의 또 다른 역도인 흥화도가 강동 6주를 비롯한 압록강 유역의 수복과 깊은 관련이 있듯이, 운중도의 형성과 운영 양상도 중부 내륙지대의 영토 확장과정과 연결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 또한 북계와 동계, 운중도와 삭방도(朔方道)를 잇는 낭림산맥의 산지 역로망에 관해서도 향후의 고찰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