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최근까지 월정사 팔각구층석탑(八角九層石塔)을 향하여 놓여 있던 석조보살좌상이다. 현재 월정사 성보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으며, 1.8m의 크기이다.
월정사 석조보살좌상에 관한 문헌 기록이나 명문이 남아 있지 않아 조성 배경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다. 현재 보살상은 월정사 성보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으나 최근까지도 팔각구층석탑 앞에 놓여 있었다. 이능화(李能和)의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에 실려 있는 『월정사사적(月精寺事蹟)』과 『신효거사친견류오성사적(信孝居士親見類五聖事蹟)』에는 “탑 앞에 약왕보살석상(藥王菩薩石像)이 있는데, 손에 향로를 들고 탑을 향하여 무릎을 꿇고 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 석상은 절의 남쪽 금강연(金剛淵)에서 나왔다고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만 이 기록이 석조보살좌상의 조성 당시 상황과 직접적으로 관련되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한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실려 있는 고려시대 정추(鄭樞, 1333∼1382)의 시에는 석조보살좌상을 문수보살로 기록하고 있다.
월정사 석조보살좌상은 높은 원통형의 보관(寶冠: 보배로운 모자)을 쓰고, 왼쪽 무릎을 세운 상태로 꿇어 앉아 있는 모습이다. 이러한 자세는 원래 중앙아시아에서 유래되었기 때문에 호궤(胡跪: 호는 중앙아시아를, 궤는 꿇어앉은 자세를 말함)라고 한다. 석조보살좌상은 두 손을 가슴 앞에서 모우고 무엇인가를 바치고 있는 모습이다. 손을 중앙에 모우기 위하여 오른쪽 팔꿈치는 동자석(童子石: 아이 모습이 새겨진 돌)으로 보이는 별도의 돌 위에 올려 두었고, 왼쪽 팔꿈치는 왼쪽 무릎 위에 두었다. 오른팔을 받치고 있는 동자석은 양식적으로 보아 조선시대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원래부터 보살상과 함께 만들어졌던 것은 아니다.
석조보살좌상은 전체적으로 살찐 모습이며, 특히 얼굴은 몸에 비해 큰 것은 물론, 부풀어 올라 양 볼이 터질 것만 같다. 원통형 보관과 얼굴 사이에는 머리카락이 표현되어 있으며, 측면에서 흘러내린 머리카락은 양쪽 귀 앞 중간 부분에서 귀를 덮고 가로질러 귀 뒤에서 흘러내리던 머리카락과 함께 양쪽 어깨 위로 펼쳐지고 있다. 석조보살좌상의 귓불에는 화려한 꽃문양의 귀걸이가 표현되어 있다. 비록 살이 쪄서 양 볼과 턱이 지나치게 부풀어 있으나, 눈썹과 눈, 코, 인중, 입 등은 원만한 모습을 하고 있다. 목에는 삼도(三道: 세 개의 선) 같은 표현이 보인다.
한편, 석조보살좌상은 근육질이 아닌 적당하게 살 찐 모습으로서, 피부의 질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보살상은 균형 잡힌 안정된 자세와 적절한 비례를 갖추고 있으며, 보관과 귀걸이, 팔찌, 화려한 가슴 영락(瓔珞) 장식을 하고 있다.
석조보살좌상은 상체에 법의(法衣)를 걸치지 않았으며, 왼쪽 어깨에서부터 내려와 오른쪽 허리를 감는 천의(天衣)의 띠가 표현되었는데, 그것이 보살상의 뒷면에까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편, 군의(裙衣 : 치마)는 뒷부분의 가지런한 모습과는 달리, 다리를 넓게 벌리고 있는 앞부분에서는 신체의 굴곡을 따라 유기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대좌는 팔각연화대좌(八角蓮華臺座)로서 상대(上臺)와 중대, 하대를 갖추고 있다. 상대는 앙련(仰蓮: 연꽃이 활짝 핀 모습) 형식이며, 중대는 매우 짧고, 하대는 복련(覆蓮: 연꽃이 엎어져 있는 모습) 형식의 연화와 그 아래에 안상(眼象)이 새겨진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좌는 연꽃 잎사귀가 넓고, 활짝 펼쳐진 모습 외에 상대의 폭에 비해 하대가 훨씬 넓은 모습으로 보아 석조보살좌상과 함께 고려시대 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석조보살좌상은 강원도 강릉에서 발견된 1967년 국보로 지정된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과 1963년 보물로 지정된 강릉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의 형식과 양식적인 면에서 유사하여 고려시대 전기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월정사 석조보살좌상은 왼쪽 무릎을 세운 다음, 꿇어앉은 자세를 하고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 쥐고서 무엇인가를 공양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석조보살좌상은 공양 보살이라는 성격을 정면과 측면, 뒷면에서도 충분히 표출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월정사 석조보살좌상은 고려시대 전기에 강원도 지방에서 유행하던 원통형의 높은 보관과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 얼굴, 호궤 자세를 한 보살상의 한 예이다. 석조보살좌상은 명주(明州 : 강원도 강릉) 지방을 중심으로 조성되던 보살상의 형식이 강원도 영서(嶺西) 지방에서도 유행하였다는 것을 알려 주는 중요한 예이다. 한편, 고려시대 전기에 양식적으로 영향 관계 속에 있던 요(遼)나라 보살상의 모습도 간취되고 있어서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