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아미타불좌상은 높이 57㎝, 무릎 폭 40㎝, 관음보살좌상은 높이 40.5㎝, 무릎 폭 25.5㎝, 대세지보살좌상은 높이 55.4㎝, 무릎 폭 33㎝. 목조아미타삼존불상은 아미타불상을 중심으로 관음보살상과 대세지보살상이 협시하는 모습으로 봉안되어 있다. 그러나 관음보살상은 크기와 조형적인 특징이 다른 두 불상과 달라 원래 같이 조성한 보살상이 없어져 다른 보살상을 이운한 것으로 보인다. 아미타불상의 두 손은 따로 만들어 끼워 넣은 상태이다.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높이 57㎝인 중형 불상으로, 결가부좌를 취하고 있다. 신체에 비해 머리가 큰 편이며, 앞으로 약간 움츠린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불좌상은 대의 안쪽에 편삼을 착용하고 가부좌를 하였다. 오른손은 손등을 위로 한 채 오른쪽 무릎 위에 올려놓았고,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하여 왼쪽 무릎 위에 두었다. 이마의 폭이 넓고 턱이 좁은 둥근 형태의 머리를 가지고 있으며, 끝이 뾰족한 나발(螺髮)을 빼곡하게 배열하여 머리카락을 표현하였다. 육계(肉髻)의 경계선은 분명하지 않으며, 그다지 높지 않은 원통형의 정상 계주(髻珠)와 반원형의 중앙 계주가 있다. 얼굴의 폭이 길이에 비해 넓은 편이며, 가늘고 긴 눈썹과 눈, 원통형에 가까운 코, 적당한 크기의 입을 가지고 있다.
법의로 대의(大衣)와 승각기(僧脚崎) 등을 걸치고 있는데, 신체의 윤곽을 따라 처리된 법의 주름은 형식화되어 있다. 왼쪽 무릎 위를 덥고 흘러내리는 연꽃잎 같이 생긴 소매 자락은 17세기 후반부터 보이는 특징이다.
목조대세지보살좌상은 머리를 쌍계 형식으로 묶고 화관(花冠)을 착용한 것을 제외하곤 얼굴의 표정과 착의법 등에서 아미타불좌상과 비슷하여 노적사에서 함께 조성된 것이다. 반면 관음보살좌상은 크기와 조형적인 특징이 두 불상과 다르며, 정확한 조성 배경도 알 수 없다. 다만 관음보살좌상 밑바닥에 1800년 4월 15일 관음보살을 개금한다는 묵서를 통하여 관음보살좌상도 18세기에 조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목조아미타불좌상의 대좌에는 조성 배경을 알려주는 묵서(墨書) 2개가 있다. 그 중 하나의 묵서에는 1713년 7월 5일에 시작하여 8월 6일에 일을 완성하여 노적사(露積寺) 극락보전 아미타연대(阿彌陀蓮臺)에 봉안하였다는 내용과 조성에 참여한 조각승 진열(進悅), 영희(靈熙), 태원(太元), 처림(處林), 청휘(淸徽) 등의 이름이 적혀 있다. 노적암(또는 노적사)은 1711년 북한산성을 축조한 후 산성의 수비와 관리를 위하여 건립한 사찰이다.
그리고 1813년에 쓰인 「상운사극락전중창기(祥雲寺極樂殿重創記)」에 1722년 승장(僧匠) 회수(懷秀)가 상운사를 창건하였다는 기록과 아미타불좌상 대좌의 1730년명 묵서에 상운사에서 백기(白基), 현지(玄持) 등이 개금하였다는 기록을 통하여 불상은 18세기 전반에 상운사로 옮겨 왔을 가능성이 높다.
상운사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은 머리가 신체에 비해 큰 편이며, 머리의 윗부분의 폭이 넓고 아랫부분이 좁은 둥근 형태를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특징은 조선시대 17세기 후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목조아미타불좌상의 대좌 묵서에 기록된 1713년의 조성 연대와 어느 정도 일치하고 있다.
상운사 목조아미타삼존불상 중 관음보살좌상을 제외하고는 1713년에 노적암에서 만든 기년명 불상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또한 진열, 영희, 태원, 처림, 청휘 등 조각승들의 이름이 확인되어 18세기 전반의 조각승 계보를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