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서산(瑞山). 자는 영숙(榮叔), 호는 동촌(東村). 아버지는 사복시정 유언(柳堰)이다. 성혼(成渾)·이이(李珥)의 문인이다.
1642년(인조 20)에 문음으로 예빈시봉사에 임명되었으나 입사하지 않았다. 다음해에 스승 이이의 문묘종사문제(文廟從祀問題)를 둘러싸고 삼사가 탄핵을 하자, 이에 대항하여 황해도 유생을 이끌고 왕에게 상소하였으나, 상대편에게 역이용당하고 말았다. 이후 중앙 정계의 진출을 단념하고 향리에 은거하여 학문연구에만 정진하였다.
경서에 정통하고 문장이 능하였으며, 효성이 지극하였다고 한다. 사후에 국가에서 정문을 내려 효행을 포상하였다. 저서에는 『동촌유고(東村遺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