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실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후기 판도판서, 전라도병마사, 밀직부사상의 등을 역임한 무신.
이칭
은암(隱庵)
시호
정신(貞愼)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336년(충숙왕 복위 4)
사망 연도
미상
본관
서산(瑞山)
출생지
미상
주요 관직
판도판서|전라도병마사|밀직부사상의
관련 사건
김용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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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후기 판도판서, 전라도병마사, 밀직부사상의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본관은 서산(瑞山). 호는 은암(隱庵). 시호는 정신(貞愼). 정당문학(政堂文學)을 지낸 유성윤(柳成潤)의 6세손이고, 서령부원군(瑞寧府院君) 유성계(柳成桂)의 손자이며,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 유숙(柳淑)의 아들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무예에 능하여 말타고 활쏘기를 잘하였다. 1361년(공민왕 10) 10여 만명의 홍건적이 재차 침입해오자 왕은 안동으로 피난하였는데 그 때 왕을 호종한 공으로 2등공신이 되었고, 1363년 김용(金鏞) 일파가 흥왕사에서 난을 일으켰을 때 왕을 피난시킨 공으로 역시 2등공신이 되었다.

우왕이 즉위하여 판도판서(版圖判書)가 되었고, 1376년(우왕 2) 전주도병마사(全州道兵馬使)로 있을 때 왜구를 실은 20여 척의 배가 임주(林州)에 침입해오자 지익주사(知益州事) 김밀(金密)과 더불어 싸워 물리쳤다.

같은 해 왜구가 또 낭산(朗山: 지금의 礪山) 등지에 침입하자 원수 유영(柳濚)과 함께 싸워 30여 명을 죽이고 우마(牛馬) 300여 마리를 빼앗아 그 주인에게 돌려주니 우왕이 심히 기뻐하여 후한 상을 내렸다.

이듬해 해주와 평주에 왜구가 침입해오자 최영(崔瑩)·변안열(邊安烈) 등과 함께 이를 격파하였다. 그 뒤 왜의 기병 300여 기가 고부·태인 등지에 침입하여 관사를 불태우자 이를 추격하였으나 패퇴시키는 데 실패하여 전주를 함락당하고 말았다.

계속하여 적에 대항하여 싸웠으나 패하였다. 그리하여 헌사(憲司: 사헌부)로부터 탄핵을 받아 봉익(奉翊) 이상의 벼슬은 삭탈되어 유배되었다가 곧 석방되어 밀직부사 상의(密直副使商議)를 지냈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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